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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립(CLeaF) 101호 언약신학

CLF 클립(CLeaF) 101호 


* 성경적 법학 연구의 주요 테마 중의 하나로 언약신학(언약사상)에 대한 연구가 있습니다. 연구위원장을 역임한 이대 로스쿨 김대인 교수님이 작년 발표한 논문 사회계약론의 기원에 대한 법사학적 고찰계약법역사와 언약신학을 중심으로에 언약신학에 관한 언급이 있어 그 부분을 발췌하여 소개합니다. 상세한 각주와 원문 전체는 첨부한 파일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언약신학

 


구약성경에서의 언약을 보면 신()과 인간 간에 상호 간의 약속과 의무를 담은 도덕적인 성격의 협약을 체결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창세기 9장에 나오는 신과 노아 간에 체결한 언약이 대표적이다. 이 외에도 다양한 언약이 구약성경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러한 다양한 언약들의 공통적인 초점은 관계에 있음을 볼 수 있다. , 언약은 특정한 종류의 일련의 관계를 헌정화(constitutionalizing)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구약성경에서의 언약개념은 고대 근동의 종주-봉신 조약’(suzerain-vassal treaty)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대표적인 고대 근동의 종주-봉신 조약에 해당하는 히타이트 조약의 주요 구조는 다음과 같다. 1) 서문, 2) 역사적인 배경설명, 3) 조항, 4) 문서보관에 관한 규정, 5) 증인으로서의 신들, 6) 저주와 축복, 7) 공식적인 선서, 8) 거룩한 의식, 9) 배신을 하는 봉신에 대한 절차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히타이트 조약과 유사한 구조를 가지고 있는 구약성경 속의 언약의 예로는 신과 모세가 맺은 십계명 언약, 여호수아 24장에 나오는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과의 언약 등을 들 수 있다. 그러나 구약성경에서의 언약개념은 이러한 고대 근동의 종주-봉신 조약의 개념과 동일한 것은 아니다. 언약개념은 언약 백성을 수립하는 데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고, 보다 강한 도덕적 헌신을 언약 백성에게 요구하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구약성경에서의 언약개념은 11세기부터 14세기 사이에 유럽의 각 지역 유대인 커뮤니티의 정치적인 성격을 설명하는 데에 활용되었다. 또한 중세시대 봉건주의의 핵심인 군주와 가신 간의 계약에도 유사한 구조가 적용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언약은 종교개혁의 시기에 이르러서 정치이데올로기 및 정치철학의 중요개념으로 재등장하게 된다. 왜냐하면 종교개혁가들은 언약의 개념이 그들이 지향하는 교회정체에 가장 부합한다고 생각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16세기의 스위스 종교개혁과정에서는 연방신학’(federal theology)이 나타나게 되었는데, 여기에서 연방’(federal)이라는 개념은 라틴어의 ‘foedus’에서 온 것이고 여기서 ‘foedus’언약’(covenant)을 의미한다. 이러한 언약사상은 처음에는 베즈와 같은 신학자들에 의해서 수립되었으며, 이후 알투지우스와 같은 정치철학자에 의해서 구체화되었다.

 

베즈는 계약의 자유로부터 유추하여 정치적인 언약을 이론화하였다. 그에 의하면 계약의 자유는 사적 당사자들끼리 결혼, 상업, 금융, 노동, 재산 및 기타 거래에 대한 계약을 맺을 권리를 말했다. 그는 이런 사법상 계약법에서 유추하여 정치적 언약들의 주요 요소와 정치적 언약을 형성하고 파기하는 근거들을 제시했다. 사법에서는 선의의 당사자를 착취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비양심적인 계약이 무효화되거나 소멸되는데, 베즈는 공법에도 이와 같은 원리가 적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예를 들어 지배자가 신과 자연법에 대해 명백하게 위반되는 행위를 요구할 때에는 이러한 요구에 응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또한 사적 계약과 마찬가지로 정치적 언약 역시 무력, 공포, 사기에 의하지 않고 반드시 자발적으로 맺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베즈는 혼인 언약을 정치적 언약의 원형모델로 삼았다. 그는 정치적 언약이 신 앞에서 남편과 아내가 맹세한 혼인 언약과 마찬가지로 지배자와 인민이 신 앞에서 맹세하는 굳건한 언약이라고 주장했다. 혼인 언약과 마찬가지로 정치적 언약은 모든 당사자의 완전하고 자의에 의한 동의와 이 약속에 참여할 수 있는 법적 자격과 자유를 필요로 했다. 혼인 언약과 마찬가지로 정치적 언약은 그 기본적 조건들이 이미 신과 자연에 의해 정해져 있었으며, 이것은 지배자와 인민이 신법과 자연법, 시민의 권리와 자유, 공동체의 믿음과 질서를 존중해야 한다는 조건을 포함했다. 이런 형성 조건들이 위반되었을 때 혼인 언약과 마찬가지로 정치적 언약도 폐지될 수 있었다. 이처럼 결혼과 국가형성 사이의 관계, 이혼과 정치적 변화 사이의 관계라는 방법론적 대칭 및 공동작용에 대한 강조는 로크의 사회계약론에 영향을 미쳤다.


다음으로 칼뱅주의자인 후커는 그의 교회정치론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인간들의 정치사회 전체에 명령을 내릴 수 있는 법률을 제정하는 합법적인 권력은 의당 동일한 전체 사회에 속하기 때문에, 지상의 어떤 군주나 권력자이든 신으로부터 직접적이고 개인적으로 받은 명시적인 위임 없이 또는 그들이 법률을 부과하는 자들의 권위에서 직접적으로 유래하는 권위에 근거하지 않고 스스로 동일한 권력을 행사하고자 한다면 그것은 단순한 전제정치보다 결코 나을 것이 없다. 따라서 공적인 승인을 통해서 그렇게 제정되지 않은 것은 법률이라 할 수 없다. 우리가 그 구성원인 사회가 언제든 사전에 동의를 했을 때 그리고 유사한 보편적 합의에 의해서 그것을 취소하지 않았을 때 우리는 명령을 받는 것에 동의한 것이다.” 이 부분은 로크가 통치론에서 직접 인용하고 있기도 하다.


알투지우스는 연방정치(federal politics)를 주장했는데, 그는 봉건사회의 신분에 입각한 질서와 막 등장하기 시작한 국가의 강압적, 행정적 위계질서 모두를 반대했다. 알투지우스는 사회 내의 모든 중요한 관계는 계약적인 성격을 갖는다고 보았다. 이러한 관계는 단지 합의의 성격만을 갖는 것이 아니라 언약을 기반으로 한 것이었다. 알투지우스는 시민사회를 그보다 작은 단위의 결사체의 결합으로 보았다. 가장 기초적인 단위는 가정인데 이는 상호간 의무를 포함하는 약정(pactum)에 기반하는 것으로 보았다. 다음으로는 민간결사체(대학이 대표적이다)가 존재하며 이는 약정과 법에 기반한다고 보았다. 민간결사체의 결합은 도시이고, 도시의 결합이 지역이며, 도시 및 지역의 결합은 보편적인 공공단체였다.

 

알투지우스에 의하면 이 각각의 연합은 명시적인 또는 묵시적인 계약이나 언약, 즉 각 연합에 속한 구성원들이 공통된 재산, , 권리 등에 대해 맺은 집합적 구속과 공통된 약속에 의해 형성되었다. 이 구속과 계약, 또는 언약을 통해 구성원들은 그들의 재산과 일과 권리를 각각 자신의 능력에 따라 공정하게 그리고 적절하게 연합 내 다른 구성원들과 의사소통하고 공유하도록 동의한다. 그럼으로써 공동체 및 공동의 삶을 창조하며 가능한 만큼 각 사람의 여러 또는 독특한 필요들이 채워진다. 알투지우스는 이런 자발적인 사회계약을 자연적, 자발적, 정치적 연합의 설립헌장 또는 합의헌법이라고 불렀으며, 이 연합들이 합해 공동체를 형성한다고 보았다. 그리고 각각의 설립헌장, 계약, 언약은 공동체, 연합, 공생의 일반법의 적용을 받는다.


독일의 저명한 법사학자인 오토 폰 기르케(Otto von Gierke)는 사회계약론을 이론적 차원으로 정립한 학자로 바로 알투지우스를 들고 있다. 그는 알투지우스가 사회계약’(Gesellschaftsvertrag)지배계약’(Herrchaftsvertrag)을 구별하였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이처럼 양 개념을 구분함으로써 계약에 기반한 정치사상의 모델을 제시했다고 주장한다. 그는 이러한 알투지우스의 관점이 훗날 루소와 프랑스 계몽사상가들에 의해 지지되었다고 보았다.


구속력 있는 국제법을 추구했던 그로티우스가 원래 구상한 것은 보편국제법의 체계였지만, 국제법 주체 간에는 개인들 상호간과 유비적인 관계가 존재하므로 그의 국제법은 동시에 사법(私法)의 이론이기도 하였다는 평가가 있다. 그로티우스에 의하면 현실로 인간의 능력 내에 있거나 있다고 주장되는 언어적 표명에는 3단계가 있다. 첫째 단계는 단순한 확언인데, 이는 계획이나 의견에 관한 표명으로, 아무런 구속을 초래하지 않는다. 둘째 단계는 편무적 약속인데, 이는 사회적, 윤리적 영역의 기속력 있는 의사결심으로, 의무는 발생시키지만 권리를 발생시키지는 않는다. 셋째 단계는 완전한 약속인데, 의사결심에 의사표명의 수령자에게 권리가 이전될 것이라는 표시가 추가된다. 그러면 이처럼 완전한 약속에 해당하는 의사표시의 예로는 어떤 것이 있는지 문제되는데, 그로티우스는 신이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어 가나안족, 헷족, 아모리족, 브리스족, 여부스족, 기르가스 족의 땅을 그의 후손들에게 주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을 예로 든다. 그로티우스는 신이 자신이 약속들을 준수하지 않는다면 자신의 본성에 반하여 행동하는 것이라고 하면서 약속 엄수를 기독교적으로 정초하려고 시도한다.

 

이러한 언약신학은 칼뱅주의자였던 로크와 루소 등이 주장한 계몽주의와 탈계몽주의 시대의 매우 세속화된 사회계약론으로 변형되게 된다. ...


 

- 김대인, 사회계약론의 기원에 대한 법사학적 고찰계약법역사와 언약신학을 중심으로, 법사학연구 67(2023)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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