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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립(CLeaF) 95호 김교신이 법률가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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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F 클립(CLeaF) 95호 김교신이 법률가에게  

* 김교신 선생이 19394월 성서조선 123호에 무수한 직장이란 제목으로 쓴 글입니다. 처지와 상황은 다르지만 현대의 기독법률가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있어 옮겨 싣습니다. 원문을 현재 어법에 따라 수정한 현대문버전입니다. 

 




김교신이 법률가에게 


 


법학을 전공하는 어느 학생이 말했다. “원래부터 법률이니 경제학이니 하는 것이 아무런 재미도 없고 그저 무미건조하기만 했습니다. 더군다나 기독교 신앙을 가지게 된 다음에는 차마 장래에 사람을 심판하는 판사나 검사도 될 수 없겠습니다. 또한 변호사 노릇에도 아무 흥미를 느낄 수 없습니다. 그러니 차라리 약간 있는 자산을 모두 정리해서 시골에 가서 농사나 지으며 살겠습니다.” 나는 이 청년에게 잔인한 듯하나 반대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첫째로 전원생활도 못할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유일한 크리스천의 직업이며 가장 신성한 산업인 줄로 알았다면 크게 잘못이다. 전원에서도 죄를 짓는 생활을 할 수 있음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농사를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인 줄로 아는 것도 교만한 생각이다.

 

근대식 공장일이 고달프다 해도 농사에 비기면 문제가 못 된다. 농사는 역시 근로의 왕이다. 만일 신앙의 눈으로 보지 않는다면 이마에 땀을 흘리면서 잡초가 무성한 땅을 뒤지는 일은 확실히 낙원에서 쫓겨난 자의 저주의 상징이다. 농사가 어려운 것은 그 노고가 엄청나다는 것 말고도 그 수익이 극히 박하다는 점이다.

 

많이 배운 자가 농사하기 어려운 것은 일이 힘들어 못 이긴다기보다 수지타산에서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농사도 물론 좋지만 전원생활의 낭만을 꿈꾸는 감상적인 청년의 꿈으로는 안 된다.

 

법학을 연구하려거든 모든 문명국가 법전의 근원이 되는 모세5경을 상고할 것이다. 열국 법률의 기본은 여기에 있다. 추상같이 엄한 법률 조목의 이면에는 두 뺨에 눈물을 흘리고 앉아 있는 늙은 아버지의 모습이 있다. 이것이 뚜렷하게 보이지 않는다면 아직 법률을 아노라고 할 수 없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교육하고자 제정하신 법률의 동기를 더듬어 보면 법률의 조목조목은 연애소설보다도 달큼하여야 할 것이다. 물을 마시려거든 샘솟는 원천에서 마시라. 학문을 하려거든 또한 그 근원을 더듬으라.

 

판사를 심판자로만 보는 것은 산상수훈을 잘못 읽은 것이다. 재판을 하되 증거에 나타난 것으로만 하지 말고 솔로몬과 같이 사람의 마음속의 속까지 투시하는 판결을 내리고자 해보라. 이는 가장 현명한 인간이 최대의 정성을 다하여야 할 성스러운 일이다. 열왕기 상권 3장을 읽고서 명판사가 되고 싶지 않은 크리스천은 없을 것이다.

 

검사와 변호사도 그렇다. 사회의 정의를 위하여 권세를 꺾고 억울한 원혼을 위하여 당연한 사리를 밝히는 일, 이보다 더 크리스천의 온 마음을 기울여야 할 일이 어디에 또 있을까. 링컨도 간디도 변호사였다. 바울도 일종의 변호사요 예수는 최대의 변호사였다. 죄 없는 자를 변호할뿐더러 죄의 동기를 분석해서 동정하며 변호하셨다. 나중에는 죄를 스스로 지고 십자가에 걸려서 영원히 변호하신다.

 

무릇 건강한 자에게는 맛있는 음식이 없어서 걱정이 아니요 과식이 걱정이다. 이처럼 크리스천에게는 세상의 모든 학문과 직업이 다 흥미가 많아서 걱정이다. 하지 말아야 할 일은 없다. 내 속에 그리스도의 생명이 날마다 새롭다면 세상 살림이 날로 새롭고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 김교신, 무수한 직장, 성서조선123(1939.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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