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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F 클립 14호 파스칼의 팡세 – ‘시니컬(Cynical)’의 미덕 (1) (2022. 10.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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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F 클립(CLeaF) 14 



파스칼의 팡세

   - '시니컬(Cynical)'의 미덕 (1)​¹ 


 

                                                       이병주² 




1. 책 읽는 나이와 독서의 의의

 

    40대가 넘어서 파스칼의 팡세(명상록)을 읽었다. 너무 좋았다. 너무 좋고 맘에 들어서, 읽고 또 읽고 또다시 읽는다. 파스칼이 이 책에서 보여주는 진지하면서도 시니컬한’, 인생(人生)과 세상(世上)에 대한 시각은 너무나 유쾌하다.

    고등학교 사춘기 때, ‘인생이 뭘까?’하고 무척 궁금해하던 시절, 한번 손에 잡았을 법한 책이기는 한데... 읽었는지 안 읽었는지 통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때는, 인생을 막 시작하기 전() 진리와 을 쫓았던 이상주의적(ideal) 10대에는, 가사 이 책을 읽었더라도 이 책의 진지하지만 인생을 비웃는 듯한 태도에 공명(共鳴)할 능력이 없었을 것이다. 인생을 시작하자마자 세상에 부딪혀, 광주(光州)5(五共) 때문에 거리에서 싸우던 질풍노도의 청춘 시절, ‘진지(眞摯)하게 세상과 다투는 책만 읽었던 급진적(radical) 20대에, 팡세(명상록)같이 한가해 보이는 제목의 책에 매력을 느꼈을 것 같지는 않다. 결혼과 직장생활을 시작하고, 밤새도록 서류를 붙잡고 일과 싸우며, 의외로 녹록지 않은 직장생활에 적응하려고 진땀을 흘려가면서, 소시민적 감성으로 소소한 칭찬에 매달리며, 애쓰고 씨름하던 현실주의적(practical) 30대에는, 파스칼의 팡세를 읽고 인생을 논할 만한 우아함과 삶의 여유가 없었다.

    그러나 산전수전 다 거치고, ‘인생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깨닫고, ‘인생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그리고 아무리 기를 써봐야 인생에 그리 대단한 것은 없다는 씁쓸한 진실을 알게 된 나이, 세상과 인생에 대해서 슬슬 시니컬해지기 시작한 40대의 나이에, 내 손에 들어온 파스칼의 팡세는 인생의 통쾌함과 유쾌함을 맛보게 해주는 큰 선물이었다. 인생과 세상에 대한 진지하면서 시니컬한 시각, 인간을 진지함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도록 자유(自由)케 하는 시니컬의 미덕! 이하에서 팡세의 몇 구절을 함께 살펴보면서 같이 연구해 보자.



2. ‘말하지 말라

 

    팡세의 44번째 문단은 이렇게 질문한다. 당신은 사람들이 당신을 좋게 생각해 주기를 바라는가?그럼, 당연하지! 누구나 이것 때문에 사는데~~.’ 우리가 눈치를 보고 아부를 하고, 잘난 척을 하고 자랑을 하면서 사는 모든 일은 사람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우리가 직장을 얻고 일을 받고 돈을 벌고 보람을 찾는 모든 일은 사람들이 우리를 좋게 생각해 주어야 가능한 일이 아닌가? 그런데 파스칼은 우리가 사람들의 호의(好意)를 얻는 방법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심플한 의외(意外)의 답을 알려준다. 말하지 말라!

    말을 하지 말라? ? 말을 하면, ‘숨겨왔던 나의 본색(本色)’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내가 나의 잘남을 보여주고 싶어서 마~말을 하면’, 듣는 사람은 나의 잘남에 감동받지 않고 나의 잘난 척하는 속물(俗物)에 곧바로 [X] 표시를 한다. 내가 좋은 뜻으로, 후배들에게 인생의 좋은 경험을 전해 주려고 열~심히 말을 하면,’ 듣는 인생의 후배들은 처음에는 조금감동을 받다가, 서서히 지루해하고, 나중에는 지겨워져서 눈을 뜨고 잠을 잔다.’

    그러니, ‘식사 자리에서 80, 90의 발언권을 혼자 독점하는 직장상사(上司)와 권력자들이여’, 말하지 말라! 입 없이 귀만 있는 아랫사람들은 답답하고 지루해서 속이 터진다.’ ‘잘 나가고 싶어서, 잘 보이고 싶어서, 수시로 끼어들며 말하고 자랑하는 사람들이여’, 말하지 말라! ‘당신의 입속으로, 당신의 시꺼먼 속이 다 보인다.’ ‘자신을 좋아하고 자기를 너무 사랑하는 사람들이여’ ‘당신에 대해서남에게 너무 말하지 말라. 남들은 각자 자기 인생을 감당하느라 바쁘고 힘들어서 당신 인생에 돌릴 관심도 없고 박수칠 힘은 더더욱 없다. 말을 많이 오래 하면, 듣는 사람에게는 반드시잠이 온다. 아무리 입이 근질근질해도 사람들이 진심으로 당신에게 마이크를 주기 전에는 말하지 말라. 마이크를 잡았다 싶어도 잠깐만 짧게 말하고 금방 마이크를 놓아라. 이래야만 다른 사람들이 당신을 좋아하게 된다.



3. ‘친절(親切)의 한계

 

    팡세의 72번째 패러그래프, ‘인간의 불균형(不均衡)’. 친절이란 인간이 갚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한 받아들여질 수 있다. 그 이상이면 감사가 증오로 바뀐다.파스칼이 인용한 타키투스의 이야기이다. 사랑과 친절은 많을수록 좋은 것인 줄 알았더니(多多益善), 그게 아닌가 보다. 사람이 사랑하는 데에도 한계가 있고, 사랑을 받는 것에도 한계가 있다. 우선 사람이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능력(能力)에는 (사람마다 용량이 다르지만) 분명한 한계(限界)가 있다. 억지를 써서 이 한계를 넘어서면 꼭 뒤탈이 난다. 사랑을 받는 것이 좋은 결과를 내기 위해서도, 주는 사랑에 한계가 필요하다. 부모가 애를 너무 사랑해서 물고 빨고 업고 어르고 달래고 애한테 쩔쩔매면, 애를 망친다. 분별없는 사랑은 사람을 망치고 사랑을 망친다.

    파스칼과 타키투스가 말하는 갚을 수 있는 친절은 주고받는 사람 간에 인격적 대등성과 존엄성을 유지시킨다. 그러나 갚을 수 없는 친절은 주고받는 사람 간의 인격적 대등성과 존엄성을 훼손시킨다. 이 훼손은 선한 것을 악한 것으로 바꿀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다. 그러니까 사람 간의 사랑과 친절은 모든 것이 무조건적으로 다 좋은 것이 아니다.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 간에 대등하고 유기적인 인격적 관계가 유지되어야 한다. 그리고 반드시 이성적이고 현실적인 지혜와 상호간의 존경심이 함께 동반되어야 한다.

    파스칼은 화음(和音)’은혜(恩惠)’친절과 모든 좋은 것들의 지나침을 경계하는 내용을 다음과 같이 전개한다. () 너무 큰 소리는 우리를 귀머거리로 만든다. 너무 많은 빛은 우리를 눈부시게 한다. () 진리도 도가 지나치면 무기력하게 한다. () 음악에 너무 많은 화음은 우리를 화나게 한다. 너무 많은 은혜도 우리를 분노하게 한다. 우리는 우리가 진 빚 이상으로 갚을 수 있기를 원한다. "친절이란 인간이 갚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한 받아들여질 수 있다. 그 이상이면 감사가 증오로 바뀐다."(타키투스, Annals, iv. 18)

    ‘친절에 대한 시니컬한 시각!’ 너무 냉정한가? 맞다. 너무 냉정하다. 슬프지 않은가? 맞다. 슬픈 일이다. 너무 이기적인가? 아니다. 이것은 이기적인 것이 아니다! 한계를 넘는 사랑과 친절과 이타심은, 결국 그 사람을 도로 더 이기적인, 사랑과 친절에 대해서, 더 허무해지고 더 차가워진 사람으로 전락시킨다. 그러니 무리한 친절은 결코 이타적인 친절이 아니다. 지나친 선은 악을 낳는다. 그러니 시니컬한 친절이 오히려 진지한 친절이고, ‘정확하고, 지속가능한친절이며, 이기적이지 않은 친절이 될 수 있다. 사람이 사랑할 때, 사랑하는 도 믿지 말고, 사랑받는 도 믿지 말고, 둘 사이의 사랑그 자체도 믿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헷갈리지 않고 진정으로 사랑할 수가 있다



    (다음 호에 계속...)



¹ 이 글은 아포리아 북 리뷰{Aporia Reivew of Books, Vol.1, No.4(201312)}’에 실린 파스칼의 팡세에 대한 서평의 일부를 옮겨 실은 것입니다. 

² CLF 대표, 법무법인 디라이트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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