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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F 클립 15호 파스칼의 팡세 – ‘시니컬(Cynical)’의 미덕 (2) (2022. 10.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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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F 클립(CLeaF) 15 



파스칼의 팡세

   - '시니컬(Cynical)'의 미덕 (2)​¹ 


 

                                                       이병주² 



    (이전 호에 이어...) 



4. ‘인간의 자기사랑(自愛)’

 

    팡세의 100번째 문단, ‘자애(自愛)’. () 인간은 위대(偉大)해지기를 원하지만, 자기 자신이 비참(悲慘)하다는 것을 발견한다. 인간은 행복(幸福)해지기를 원하지만, 자기 자신이 비참하다는 것을 발견한다. () 인간은 사람들 사이에서 사랑과 존경을 받기를 원하지만, 자기 자신의 결함으로 인해 오직 사람들의 증오와 멸시의 대상이 된다는 것을 발견한다. 자기 자신이 처해있는 상황에 대한 이런 종류의 당혹(當惑)감은 인간 안에서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추악하고 불의한 정념을 불러일으킨다. 인간은 자신을 책망하고 자신이 결함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인식시켜 주는 모든 진리에 대해 강렬한 증오심(憎惡心)을 품게 된다. ()그러나 인간은 너무나도 허영심(虛榮心)이 강해서 주변의 대여섯 명이라도 우리를 존경해야 기뻐하고 만족하며 (팡세 148문단), 교만(驕慢)은 우리의 재난과 오류의 한복판에서도 우리를 본래적으로 사로잡아서, 우리는 사람들이 말해주기만 한다면 기꺼이 우리의 생명(生命)도 바친다 (팡세 153문단).

    크게 성공하거나 위대한 업적을 남긴 음악가나 예술가들의 노력을 만든 대부분의 동인(動因)은 열등감과 콤플렉스라고 한다. 그러니까 그들은 위대해졌지만 그들의 인생은 비참함 속에서 배태되고 유지된다. 현대 정보사회에서 사람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기를 원하고 실제로 많은 사랑과 인기를 얻는 사람들의 인생은, 타인들의 평가에 그 운명이 넘겨져서, 한순간 실수로 증오와 멸시의 대상으로 떨어진다. 사람은 모두 크고 작은 자기사랑으로 움직인다. 인생은 자기사랑의 성공과 좌절로 부침하며, 큰 성공은 큰 좌절로, 큰 박수는 큰 비난으로, 수시로 돌변한다. 인생은 100비극으로만 일관하는 것은 아니지만, 끊임없는 슬픔과 힘든 일과 비참함과 고달픔으로 연속되어 있다. 인간의 자기사랑은 10대에도 상처받고 20대에 벽에 부딪히고 30대에는 맹목적으로 되며, 40, 50대를 넘어가면서는 점차 무상하고 무의미해져 간다.

그러나 우리의 허영심과 자존심은 너무도 강렬해서, 우리는 결코 인생의 무의미함과 무상함을 쉽게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다. 우리는 사람들의 칭찬과 존경을 받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으며, 나의 자랑이 무너지는 상황, 나의 자랑이 공격받고 위협받는 상황에 대해서는 강력한 증오심과 거부감을 아낌없이 발현하며 내가 가진 공격성과 폭력성을 모두 발휘하게 된다.

 


5. ‘완전한 휴식(休息)과 기분전환(氣分轉換), 사소한 일이 주는 무거움과 큰 위로(慰勞)

 

    팡세의 131째 문단, 권태(倦怠). 열정, , 기분전환 없이 완전히 휴식을 취하는 것만큼 인간이 견디기 어려운 것도 없다. 그때 그는 자신의 무가치함, 버려짐, 부족함, 의존감, 권태, 공허함을 느낀다. 즉시 그의 심령 깊숙한 곳에서는 권태, 우울, 슬픔, 초조, 원한, 분노가 일어난다.

    부지런한 사람은 의미 있는 일들로 인생을 채우려 하고, ‘아무 생각 없이 보내는 휴식의미 없는 일이라고 하여 싫어하고 미워한다. 과연 들이 인생의 본질적(本質的)인 것이고, ‘휴식은 인생의 비본질적인 낭비적인 것일까? 아니다. ‘은 오히려 인생의 비본질적인 수단(手段)적 시간이고, ‘일하지 않는, 그냥 앉아서 멍때리는 시간이야말로 인생의 더 본질적이고 실존적 시간이다. ‘열정으로 일에 파묻혀서, 나 자신을 잊어버리는 시간은 우리가 인생에 대한 심각한 고민에서 벗어날 수 있는 오히려 가벼운 시간이다. 그러나 일하지 않고 놀지도 않으면서 혼자 있는 시간은 우리가 인생의 실존적 고독과 불안, 막막함과 무의미함에 단독으로 맞서서 벅차게 싸워야 하는 더 본질적이고 무거운 시간이다.

    168번째 단락, 기분전환(氣分轉換). 사람들은 죽음, 비참, 무지에 대해 싸울 수 없기 때문에, 행복해지기 위해서 이와 같은 것들에 대해서 전혀 생각하지 않기로 결정했다.사람들은 너무 진지하게, 너무 많은 생각을 하면 힘들어진다. 답을 낼 수 없으니 불행해진다. 답을 찾은 것 같다가도 금방 또 흐릿해져서 답인지 아닌지 모르게 되니, 답답하고 괴롭고 숨이 턱턱 막히게 된다. 그러니까 사람은, 놀아야 한다! 감당할 만큼 일하고’, 감당할 만큼만 생각하고’, 나머지 시간은 그냥 놀아야 한다. TV와 드라마는 좋은 것이다. 너무 의미를 따지지 말고 노래도 듣고 즐기는 것이 좋다. ‘의미를 따지려면일을 하거나 생각을 할 일이고, 놀 때는 그냥놀아야 한다. 아무리 진지하고 거룩한 사람도 놀지 않으면, 인생을 감당할 수가 없다. 그러나 계속 놀면, 너무 많이 놀면? 노는 게 이 되고, 노는 것에도 집중할 수 없게 되어 다시 인생의 고독과 고민이 돌아온다. 그러니 노는 것이 인생을 채워주는 것에도 한계가 있다.

    너무 일하는 것은 고단하고, 너무 고독을 짓깨물면서 인생과 그 의미와 수많은 추상명사를 생각하는 것도 힘겹고, 너무 노는 것도 지겨워지면, 우리는 무엇으로 우리의 인생을 감당할까? 파스칼은 136단락에서 이렇게 대답한다. 사소(些少)한 일은 우리를 위로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를 괴롭히기 때문이다.청년 때에는 자기의 일로 인생을 채우지만, 나이가 들어 결혼을 하고 나면 부부간의 일, 아이 키우는 일 등 수많은 남의 일’, ‘사소하고 번잡한 의무로 우리의 인생이 가득 채워진다. 부부가 돈을 벌고, 애들 학교와 학원 보내고, 때때로 여기저기 애써 놀러 다니고, 서로 수발하고, 부모와 자녀가 수시로 서로 싸우고 지지고 볶고, 때로는 서로 낄낄거리며 웃고 하다 보면, 인생이 너무 바쁘고 힘들게 휙휙 지나간다. 부부는 서로의 인생의 짐을 상대방에게 떠넘기려고 계속 애를 쓰고, 부모는 자기가 이미 끝내고 지나온 학업과 수험생활을, 자녀의 성장 과정을 따라가면서 힘들게 재반복(replay)한다. 차라리 내가 공부를 하면 쉬울 텐데, 말 안 듣는 타자(他者)에게 공부를 시키는 것은 시지프스의 바위와도 같은 인내와 공덕을 요구한다. 이 일상(日常)의 삶과 고단한 수고(手苦)에는 고상함과 우아함이라고는 손톱만큼도 없어 보인다. 무의미해 보인다. 의미가 있다고 해도 무상하고 허망한 반복으로 보인다. 과연 그럴까?

    아니다! 생각해 보라(Behold)! 결혼생활과 자녀 양육의 온갖 번잡함과 고단함으로 채워지는 일상의 시간이 없었을 경우, 그 시간만큼의 고독을 혼자 스스로의 힘으로 감당하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일상이 빠진 만큼의 자유 시간을, 인위적인 노력으로 풍요롭고 의미 있는 시간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가능할까? 인간에게는, 우리 보통의 인간들에게는 그렇게 할 만한 힘과 능력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번잡하고 고단한 일상이 우리의 시간을 단단하게’ ‘채워주니까, 우리는 큰 고민(苦悶)’을 할 여유(餘裕)도 없이 큰 고민을 할 필요(必要)도 없이살아갈 수 있게 된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우리가 우리 스스로 우리 인생의 실존을 감당하기는 어렵다.

    ‘돈 버는 일을 착실하게 하고, 가족생활의 번잡하고 고단한 사소한 일들로 일상의 시간이 꽉 채워지고, TV 앞에 붙어서 드라마와 오디션 프로그램을 아무 생각 없이 보면서 지친 심신을 휴식(休息)시켜야, ‘한 사람의 인생이 완성(完成)’된다. 그렇게 해서 돈 버는 일노는 일사소한 일들로 우리의 인생을 가득 채워야, 그 연후(然後)그렇게 채워진 인생 자체에 대한 진지한 사색과 깨달음과 의미 있고 고상하고 거룩한 것들에 대한 실질적인 사색과 추구가 가능해진다. 그러니까 파스칼의 이야기처럼 사소한 일들이 가져다주는 괴로움들은 무의미한 고역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가능하게 하는 가장 큰 위로(慰勞)가 아닐 수 없다.



6. 시니컬의 미덕 진지하고 시니컬하게 (Serious & Cynical!)”

 

    말하지 말라! 사람들이 나를 싫어한다. 지나치게 사랑하고 과도하게 친절하지 말라! 일이 꼬이고 인생이 꼬인다. 자신의 실존과 직접 대면해야 하는 완전한 휴식자체는 오히려 감당하기 어려운 인생의 고민을 가져다준다. 그러니 생각 없는 기분전환으로의 도피(逃避)와 온갖 사소한 일들이 주는 괴로움의 위로(慰勞)가 있어야만 인생을 견디어내는 것이 가능해진다.

    그러니까 너무 진지하고 또 진지한 인생(人生)은 인생을 견디면서 살아내는 것이 힘겹고 불가능하거나, 좋은 결과를 만드는 것도 어렵다. 그러나 진지하게 시니컬하고’ ‘시니컬하게 진지한인생(人生)은 인생을 견디어내기도 쉽고, 오히려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시니컬(cynical)’은 내 인생에서 5떨어진 자리이다. 그러니까 내 인생(人生)’이 잘 보인다. ‘시니컬내가 나를 욕하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그러면 내 인생의 이 덜어지고, 내 인생이 가벼워진다. ‘진지함(serious)’은 내 인생의 좌표점 바로 그 위에 서 있다. 그러니까 내 인생을 책임 있게 움직여 갈 수 있다. 그러나 진지함내가 나를 욕하는 것을 어려워하고 싫어한다. 오던 길을 다시 갈 수도 없고, 가야 할 길을 앞에 두고 멈칫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시니컬하게 진지하면내 인생을 똑바로 보면서 내 인생을 움직여 갈 수 있다. ‘시니컬하고 시니컬하기만 하면계속 밖에서 내 인생을 구경하기만 하고 이러니저러니 말만 하는 말쟁이가 된다. ‘진지하고 또 진지하기만 하면내 인생을 어떻게 잘 해 보려고 죽어라고 애를 쓰지만, 내 인생과 다른 사람의 인생을 정확히 보지 못하니, 자꾸 실수를 하고, 실수를 하고도 실수를 한 것조차 모르며, 무겁고 힘겨운 짐을 지고 인생을 살게 된다.



7. ‘시니컬할 줄을 모르면 사람은 바보가 된다.

 

    세상에는 시니컬하지 못해서 바보가 된 두 가지 종류의 사람들이 있다. 하나는 자기를 욕할 줄 모르는 바보이고, 다른 하나는 자기만 욕하는 바보이다.






¹ 이 글은 아포리아 북 리뷰{Aporia Reivew of Books, Vol.1, No.4(2013년 12)}’에 실린 파스칼의 팡세에 대한 서평의 일부를 옮겨 실은 것입니다. 

² CLF 대표법무법인 디라이트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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