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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F 클립 17호 병들었을 때 이렇게 기도하라 (2022. 11. 9.)

기독법률가회 0 1698

CLF 클립(CLeaF) 17    




     병들었을 때 이렇게 기도하라



         우리가 기도하지 않을 수 없을 때의 하나로 병든 때가 있다. 사람은 병의 그릇이라고 할 만큼 온갖 질병에 걸릴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건강할 때는 무엇이든 자신의 힘으로 해치울 수 있는 것 같이 자신만만해 있지만 일단 병에 걸리면 딴 사람처럼 무기력하게 된다. 그것이 인간의 정직한 자세이다.  약간 무서운 병이라도 걸리면 평소 웬만큼 콧대가 센 사람일지라도 또 일이 가능한 사람일지라도 재능이 많은 사람일지라도 높은 지위의 사람일지라도 돈이 많은 사람일지라도 가엾을 정도로 맥빠진 사람이 되어버린다. 위문을 가서 기도를 하면  대부분의 사람이 눈물을 흘린다. 그 정도로 병이라고 하는 것은 사람의 마음을 약하게 만들고 불안에 빠뜨린다. 그리고 그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왜냐하면, 질병의 상태는 죽음에 가까워지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병이 낫지 못한다면 그대로 죽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이 병이라는 것이다. 병에 따라서는 바로 칼을 목에 찔러대고 있는 것과 같은 것이다. 지금 제아무리 건강한 사람이라도 내일 암의 선고를 받는다면 어떤 심경이 될 것인가 나는 13년이나 요양 생활을 했으므로 환자의 마음을 꽤 잘 알 것 같다. 단순히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것만이 아니라 - 그것으로도 짓눌려 버릴 정도의 압박이지만 - 경제적 불안을 가진 사람이 있을 것이고 학업이 늦어지는 데 초조해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또 병에 따라서는 혼기의 늦어짐, 연애의 파탄, 이혼의 쓰라린 체험 등 잔혹할 정도의 현실에 휘말리게 된다. 한 집의 주인이 병이 들면 경제적인 불안을 느끼지 않는 가정은 없을 것이며 오랜 투병 생활 때문에 부부 사이에 금이 가는 예를 나는 얼마든지 보아왔다. 이와 같이 질병은 그 자체의 불안에다 여러 가지 공포를 더해 오는 것이 되는 것이다. 그런 가운데 환자가 무슨 짓을 해서라도 낫고 싶다고 원하며 초조해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이러한 때 우리는 대체 어떻게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좋을까, 어떻게 기도하면 좋을까. “하나님, 어떻게든 이 병을 고쳐주십시오라고 하는 기도만으로 과연 좋을 것인가          

     

         내가 폐결핵에 걸린 것은 1946년의 봄이었다 그 당시만 해도 폐결핵에는 특효약이 없었다. 스트렙토마이신  등이 일반 환자의 치료에 사용된 것은 그보다 수년 후의 일이었으므로  폐결핵은 사람들이 가장 꺼려하는 전염성이 강한 병의 하나였다 그런데 얼마 뒤 나는 그리스도를 찾게 되고  “하나님, 당신의 뜻이 계시다면 어떻게든 이 병을 낫게 해 주시옵소서라고 소박하게 기도하게 되었다. 그리고 또 신자들이나 목사가 심방을 와서 내 병이 낫게 해 주기를 기도해 주었다. 그 기도는 나에게 힘을 주었으며 마음의 평안함도 가져다 주었다. 그렇게 하여 그럭저럭 약 1년쯤 되었을까 어느 날 갑자기 의문이 떠올랐다. ‘병이 낫기만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대체 자신에게 무엇보다 더 중요한 기도란 말인가하는 의문이었다. 인간은 병이 난다. 그리고 낫는다. 그렇다면 병이라고 하는 것은 말하자면 이익도 손해도 없을 뿐이란 말인가. 약간 극단적인 논법인지는 모르겠으나 병들기 이전의 자신으로 돌아갈 뿐이라면 병이라고 하는 것은 자신의 인생에 단지 공백의 기간이 있었던 것이 된단 말인가. 나는 어쨌든 병에 걸린 것이다. 그것도 폐결핵이라는 큰 병에 걸린 것이다. 이 병이 만약 나았다고 하더라도 나는 언젠가는 또 병이 날 것이며 그리고 언젠가는 죽는다. 어떤 인간이든 언젠가는 반드시 죽는 법이다. 내가 병에 걸린 이상 병자로서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는 병을 고칠 노력을 함과 동시에 죽음에 대해 생각한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죽음에 대해 생각한다는 것은 삶에 대해 생각한다는 문제와도 직결되는 것이 아닌가 나는 병자로서 자신의 생활을 근본적으로 재발견해야겠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성서 가운데 히브리서를 읽어가다가 굉장히 마음을 끄는 구절을 접했다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11:13)  그 죽음의 때에 사람은 무엇을 안고 죽어가는가. 병을 고치지 못한 원한인가, 다른 사람에 대한 증오감인가, 고독의 슬픔인가, 금전에 대한 집착인가, 육신에 대한 그 끊을 수 없는 애착인가, 죽음에 대한 공포인가,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참 평안 가운데 쉬는 소망인가. 믿음을 안고 죽었다. 얼마나 부러운 말인가 병이 낫든지 안 낫든지 먼저 신앙을 나의 가슴에 안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병든 사람들은 어떠한 기도를 하나님께 드리면 좋을까. 나는 병 그 자체에 관해 기도하기보다는 자기 자신의 나날의 생활을 인도해 주십사 하는 기도를 더 많이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원래 인간은 누구나 자기중심적인데 병에 걸리면 그것이 더욱 강해진다. 집안 사람을 불러서 곧바로 나타나지 않으면 발끈 화를 내기도 하고 병세가 악화되어 불안해져서 신경질적으로 되거나 주위 사람들을 못살게 군다거나 하면 병자 주위가 매우 우울한 기운이 되기 쉽다. 그러한 자신을 발견하고 솔직하게 하나님께 기도를 해보면 어떨 것인가. “주여, 나는 오늘도 초조하고 불안하여 남에게 마구 화풀이를 하곤 하였습니다. 제발 이러한 저를 주위 사람들에게 동정심을 갖는 인간으로 바꾸어 주옵소서. 아무리 작은 고마움에도 감사의 말을 할 수 있도록 상냥함을 주시고 저를 위해 염려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마음이 명랑해지도록 고운 말을 할 수 있는 인간으로 만들어 주십시오라는 등 자신의 생활에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하나님께 간구하면 좋지 않을까. 병든 때 어떻게 남의 일 따위를 생각할 수 있을 것인가 하고 말할지 모르겠으나 병자일지라도 남을 웃기기 위해 농담을 하는 사람도 있으며 운신도 못 하는데 남의 상담에 응해주며 언제나 사람들로부터 믿음직스러운 병자 노릇을 하는 사람도 있다 물론 대단한 고통 가운데 처하면 그렇게 할 여유도 없을 것이지만 그러나 그러한 정황 속에서라도 가령 말할 수 없더라도 다른 사람에 대한 동정심을 베풀 수는 있을 것이다 자신의 일만을 위해 고생하고 괴로워하면서 하루하루 보내는 환자와 전국의 사람들을 손꼽아 생각하고 격려하고 위로하고 건강이 이룩할 수 없는 높은 즐거움의 세계를 만들어내는 병자가 있다

 

-       - 미우라 아야코, 이렇게 기도하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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