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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F 클립 22호 톨킨과 『니글의 이파리』 (2022. 1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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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F 클립(CLeaF) 22  



톨킨과 니글의 이파리』¹



 

   『반지의 제왕집필에 몰두하던 톨킨은 어느 순간 막다른 골목에 부닥쳤다. ... 작가는 필생의 작품을 완벽하게 마무리할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에 낙담하기 시작했다. ... 그 무렵 톨킨이 살던 집 근처 길가에 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하루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밖을 보다, 이웃 사람이 가지란 가지는 다 잘라내고 줄기에도 심한 상처를 입혀놓은 게 눈에 들어왔다. 머릿속에 구상하고 있는 신화가 그처럼 토막 날 운명에 처한 내면의 나무란 생각이 들었다. 정신적인 에너지와 창의력이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눈을 뜨기 무섭게 짤막한 이야기가 떠올랐다. 작가는 서둘러 내용을 종이에 적어 갔다. 때마침 청탁이 오자 톨킨은 그 원고에다 니글의 이파리라는 제목을 붙여 <더블린 리뷰> 편집부로 보냈다. 한 화가에 관한 글이었다.

 

  ... 니글에게는 꼭 그리려는 어떤 그림이 있었다. 이파리 하나에서 시작해서 나무 한 그루 전체의 이미지를 마음에 품고 살았다. ... 니글은 머릿속의 환상을 담아내기 위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야 할 만큼 커다란 캔버스를 준비했다. ... 하지만 좀처럼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우선 화가 자신이 나무보다 잎에 더 공을 들였기 때문이다. 이파리 하나를 그리는 데 지나치리만치 오랜 시간을 쏟았다. 음영과 광택, 표면에 맺힌 이슬방울까지 있는 그대로 그리려 온 힘을 기울였다. 그러니 아무리 열심히 작업을 해도 캔버스 위에 표현되는 이미지는 거의 없었다. 두 번째는 따뜻한 마음탓이었다. 이웃들이 부탁하는 일들을 처리하느라 니글은 쉴 새 없이 붓을 놓아야 했다. 특히 이웃 남자 패리쉬는 그림 따위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틈틈이 찾아와 자질구레한 일거리들을 떠맡기곤 했다.

 

   어느 날 밤, 니글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패리쉬는 그런 상황에서도 아내가 아프니 빗방울이 떨어지는 차가운 거리를 달려가 의사를 불러와 달라고 성화를 부렸다. 결국 화가는 독감에 걸렸고 고열에 시달렸다. 아픈 몸을 이끌고 어떻게든 그림을 끝내려 버둥거리는데 죽음의 사자가 찾아왔다. 그동안 미뤄뒀던 길을 떠나자는 것이다. 더 이상 어쩔 수 없다는 걸 알아챈 화가의 눈에서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제발!” 불쌍한 니글은 엉엉 울며 소리쳤다. ‘아직 완성하지 못했단 말이요!’

 

   그렇게 세상을 떠나고 얼마나 긴 세월이 흘렀을까? 화가의 집을 사들인 이들은 죄다 해진 캔버스 위에 아름다운 이파리 한 장만이 오롯이 남아있는 걸 발견했다. 그림은 마을 박물관에 전시됐다. ‘잎사귀 : 니글 작이란 딱지가 붙은 그림은 그렇게 구경꾼들의 눈길조차 자주 닿지 않는 후미진 구석에 오래도록 걸려 있었다.


  ... 세상을 떠난 화가는 하늘나라의 높은 산들로 가는 열차에 태워졌다. 한참을 달려가는데 어디선가 두 갈래 음성이 들렸다. 하나는 엄하고 엄한 공의의 목소리였다. 허다한 시간을 흘려보냈을 뿐, 평생 이뤄놓은 일이 거의 없다면서 꾸짖었다. 하지만 또 다른 쪽에서는 비록 부드럽지는 않았지만 따뜻한 소리가 들려왔다. 자비인 듯했다. 니글이 한 일을 잘 알고 있다면서 남을 위해 희생하는 쪽을 선택했다는 사실을 지적하며 맞섰다.


   화가가 하늘나라 가장자리쯤 이르렀을 무렵, 마치 상급처럼 무언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니글은 얼른 그리로 달려갔다. 거기엔 꿈꾸던 바로 그게 있었다. 커다란 나무, 그의 나무가 완성된 모습으로 서 있었다. 잎이 벌어지고 있었다. 가지는 길게 자라서 바람에 나부꼈다. 자주 느끼거나 어림짐작으로 추측해 보았지만 좀처럼 포착할 수 없었던 바로 그 상태였다. 니글은 나무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리곤 천천히 팔을 들어 활짝 벌렸다. 그리고 말했다. “이건 선물이야!”


  ... 톨킨은 스스로 만들어 낸 이야기에서 위안을 얻었다. 글쓰기로 돌아가게 만드는 데는 C. S. 루이스의 우정과 사랑이 듬뿍 담긴 재촉도 큰 몫을 했지만 이 소품 또한 톨킨이 두려움을 떨쳐내고 다시 작업을 시작하도록 힘을 주었다.

 


  - 팀 켈러, 일과 영성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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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¹ 정오 중보기도 모임에서 니글의 이파리를 소개해 주신 태원우 변호사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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