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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eaF 27호 이스라엘아, 다시 일어나 인자를 사랑하라

기독법률가회 0 1610

  CLF 클립(CLeaF) 27   


이스라엘아, 다시 일어나 인자를 사랑하라


* 이 글은 2023. 1. 14. CLF 신년전략회의 5분 메세지 시간에 이정연 형제가 나누어준 것입니다. 기독법률가라면 깊이 공감하게 되고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귀한 글이라 여겨서 더 많은 분이 읽을 수 있도록 그대로 옮겨 싣습니다.

 

이정연 변호사 (법률사무소 '시냇가에 심은 나무') 

 

1. 성공과 실수, 그리고 가면.

 

2014년에 변호사가 되고 나서 불과 1년 만에 맡았던 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대덕연구단지의 모 IT 중소기업에서 일하는 한 박사님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그분 회사가 국가보조금을 지원받는 사업을 따내서 하던 중에 보조금 약 20억원을 사업 목적 외로 유용하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분은 여러 가지 불이익의 위험을 무릅쓰고 국민권익위원회에 부패행위 신고를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미국에서 연구원으로만 오랫동안 지내다가 조국에 기여하고 싶어 한국 회사에 취직해서 일했는데, 애국심이 무색하게도 몸담은 회사는 국익을 훼손하는 부패행위를 마치 관행처럼 저지르고 있으니 제 의뢰인은 참을 수 없었다고 합니다. 국민권익위원회가 조사한 결과 그 회사의 보조금 유용은 사실로 드러났고, 국가는 해당 보조금을 무사히 환수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 의뢰인은 내부고발자로 낙인찍혀 결국 직장을 잃었고, 업계에 소문이 나면서 다른 곳에 취업도 못 하게 된 상황이었습니다. 다만, 다행히 부패방지법에 따르면 국민권익위원회는 부패행위 신고자에게 일정한 요건 아래 보상금을 지급하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부패방지법 시행령의 보상기준에 따르면 이분이 정당하게 받아야 할 보상금은 12천만 원 정도였습니다. 이분이 잃은 것에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보상금이라도 받으면 보람은 있겠다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국민권익위원회는 부패행위 신고절차상의 문제를 트집 잡아 제 의뢰인이 받을 보상금은 2천만 원에 불과한 것으로 결정하였습니다. 의뢰인은 너무 억울한 마음에 저를 찾아왔었습니다. 저는 국민권익위원회를 상대로 행정심판을 했으나 패소했고, 더 논리를 정비해서 행정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정말 기도하면서 열심히 싸웠습니다. 다행히 1심에서 행정심판을 뒤집어 승소했고, 2심에서도 승소했습니다. 궁지에 몰려 있는 의뢰인에게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힘을 준 것 같아서 너무 기뻤고, ‘역시 정의는 승리하는구나!’ 하면서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행정심판부터 2심 판결까지 4년 반이 걸렸습니다. 소가가 많이 큰 것은 아니었지만 앞으로 변호사로서도 자랑스러운 사건이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국민권익위원회는 대법원에 상고하였습니다. 그게 2019. 10.경이었습니다. 그러나 법리적으로 새로운 쟁점이 있기 어려웠습니다. 무난하게 이길 것 같았습니다. 저는 상고이유서에 대한 답변서를 제출하고 편안하게 기다리면 되겠다 싶었습니다. 2020. 초 당시 저희 사무실에서 수습 중이던 신참 변호사(김변)에게 이 사건의 서면 작성을 시켰습니다. 1, 2심에서 제가 피를 토하며 작성해 놓았던 훌륭한 서면들이 있으니, 참고해서 내용을 정리해보라고 했습니다. 자랑스럽게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런데 서면을 작성하던 김변이 저에게 질문을 해왔습니다. 국민권익위원회를 상대로 재결 취소를 구한 대법원 판례들을 리서치했는데, 어떤 판결에는 피고가 국민권익위원회로 되어 있고, 어떤 판결에는 피고가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으로 되어 있더라는 겁니다. 이건 왜 그런 거냐고, 우리는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으로 특정했던데 그 이유는 무엇인지 물어왔습니다.

 

저는 갑자기 등골이 서늘해졌습니다. 그리고 지난 5년 동안 원고도, 피고도, 재판부도 단 한 번도 고민하지 않았던 이 사건의 피고가 잘못 특정되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행정소송의 피고는 사실심인 항소심까지만 경정이 가능하다는 사실도 생각났습니다. 대법원이 피고가 잘못되었다는 점을 알아챈다면 각하판결을 할 수 있었고, (원심도 그랬듯이) 대법원도 그 사실을 알아채지 못한다면 승소는 하겠지만 나중에 국민권익위원회가 이 점을 이유로 판결 집행을 거부할 경우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초래될 수 있었습니다. 친분이 있던 몇몇 부장판사님들과 대법원 재판연구관으로 있던 친구에게 조언을 구했으나 뾰족한 답을 얻을 수 없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대법원에서는 피고경정의 방법으로도, 당사자 표시정정으로도, 행정소송 피고를 고쳐준 사례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피고 부적격 각하한 사례는 다수)

 

그나마 제가 찾은 궁색한 방법은 하나였습니다. 일단 대법원에 피고가 잘못 특정되었다는 사실을 솔직하게 밝히고, 원심도 올바른 피고 특정에 대한 석명의무를 다하지 못했으니 대법원이 원심판결문을 경정해달라고 우기는 것이었습니다. 저 스스로도 억지스럽다고 생각했지만, 그렇게 간절한 마음으로 원심판결 경정 신청을 해놓고, 대법원의 결정을 기다렸습니다. 하루가 지나고, 일주일이 지나고, 한 달이 지나고, 일 년, 또 일 년, 그리고 또 일 년이 흘렀습니다. 대법원은 아무런 결정도 하지 않고 꼬박 만 3년을 기다리게 했습니다. 3년 동안 저의 마음 한구석에는 이 사건의 무게감이 항상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제가 얼마나 간사한 존재인지, 의뢰인을 위해서 그렇게 치열하게 고민하던 마음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만약 대법원이 각하해 버린다면 나는 어떻게 되는 걸까하는 두려움이 똬리 틀고 있었습니다. ‘본안 쟁점만 생각하면 2심까지 완벽하게 이겼던 사건이니 이 사건이 대법원에서 각하될 경우 의뢰인은 자신이 더 받았어야 할 보상금 1억 원을 나에게 배상하라고 할 텐데 그걸 어떻게 감당하나... 가족들에게 미안하고 창피해서 어떡하나...’ 하는 이기적인 고민이 잊을만 하면 찾아와 마음을 짓눌렀습니다. 각하되는 것보다는 차라리 대법원이 본안판단까지 해서 원심 판단을 뒤집고 권익위원회의 잘못이 없다고 판결해준다면 내 책임이 적어지니 더 낫겠다는 이기적인 마음까지 들었습니다. 신약성서에서 위선으로 변역된 헬라어 휘포크리시스는 원래 가면을 쓴 연극배우라는 뜻에 가깝습니다. 제가 꼭 그랬습니다. 그리스도인의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연극배우 같았습니다. 잘 될 때는 내가 정의의 편에 서 있다는 자랑을 늘어놓다가, 내 잘못에서 비롯된 위기가 찾아오면 빠져나갈 궁리만 할 뿐 정의를 행하고 인자를 사랑하는 것이 어려웠습니다.

 

2. 야곱인가, 이스라엘인가

작년 101, 대법원에서 선고기일이 통지되었습니다. 2주 후인 10. 14. 금요일 10:30이었습니다. 그때까지 대법원은 원심판결 경정이나 피고경정과 관련하여 아무런 결정도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절망적이었지만 마지막으로 하나님과 씨름을 하기로 했습니다. 10. 11. 월요일부터 닷새 동안 새벽에 예배당에 나가 주님의 허리춤을 잡고 몸부림을 쳤습니다. 에서와의 만남을 앞둔 야곱의 마음이 이해되었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기적을 바라며 중언부언 기도했습니다. 내 실수가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렇게 지는 것은 뭔가 정의롭지 못하니 하나님이 해결해달라며 그럴듯하게 합리화하면서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물으셨습니다. “너는 야곱이냐 이스라엘이냐.”

 

야곱에게는 자신을 죽일지 모르는 에서와의 만남 자체가 중요했고 그 만남을 피하는 것이 가장 절박한 삶의 문제였지만, 하나님 입장에서 그것은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이 사실은 하나님의 언약 안에 있는 이스라엘임을 발견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저 역시 대법원 각하판결을 피하는 것이 가장 절박했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나라는 존재가 하나님의 신실한 언약과 열심 안에 있는 이스라엘이라는 사실을 바로 아는 것이었습니다. 그때쯤 제 안에서 이스라엘답지 못했던 이기심과 무자비했던 욕망에 대한 깊은 회개가 올라왔습니다. 재판의 결과와 관계없이, 이스라엘로서의 제 존재를 새롭게 인식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천만다행으로 긍휼이 많으신 하나님은 저에게 실존적 구원도 베풀어 주셨습니다. 대법원은 이 사건 선고 당일 이 사건 외로 별도의 원심판결 경정재판을 열어 피고 이름을 고치는 결정을 한 후, 이어서 이 사건 선고재판을 열어 피고(국민권익위원회)의 상고를 기각하였습니다. 사실상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지난 3년간 가슴 한구석을 짓누르고 있던 부담감들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지나갔습니다. 기쁘고 흥분되었지만, 2심 승소했을 때와는 많이 달랐습니다. 2심 승소할 때까지만 해도 기세등등했지만, 이제는 그저 하나님께서 나를 긍휼히 여기셨다는 사실과 제가 여전히 하나님의 신실하신 언약 안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 감사했습니다. 저의 신실하지 못함을 품으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감사할 뿐이었습니다.

 

3. 인자를 사랑하라. 겸손하게 하나님과 행하라.

 

미가 선지자는 야훼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아사 미쉬파트) 인자를 사랑하며(아하브 헤세드)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하츠네아 레켓 임 엘로헤카)이라고 외쳤습니다(6:6-8). 정의(미쉬파트)행하라(아사)’고 표현하면서도, 인자(헤세드)는 행하라고 하지 않고 사랑하라(아하브)’고 표현한 것이 인상적입니다. 헤세드는 구약에서 보통 하나님의 언약에 기반한 신실하고 변함없는 사랑으로 번역하지만, 문맥상 이 구절에서 헤세드는 동료 인간에게 행해야 하는 삶의 태도로서 충성된 행동(act of loyalty)’ 정도로 새길 수 있습니다. 미가는 그러한 헤세드를 실천하려면 그것을 사랑해야 가능하다고 말하는 듯합니다. 타인에 대한 헤세드 실천은 그냥 말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향해 보이시는 헤세드(언약에 기반한 일관된 충성된 행동)를 항상 기억하면서, 우리도 내 삶의 바운더리에 들어온 누군가를 향해 일관되게 충성된 행동을 보이도록 끊임없이 사모하고 원해야 한다는 뜻일 것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이 말씀은 인자를 행하지못하고 넘어지는 저 같은 인간들을 향해, 그 연약함을 다소간 이해하고 토닥이면서 다시 힘을 내 인자를 사랑하라고 용기를 주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CLF가 어디까지 왔는지, 어디로 가야 할지 함께 성찰하고 한 해를 계획하는 이 시간, 부족한 저도 함께하게 되어서 감사하고 행복합니다. 우리에게 지난 해 허락된 열매와 성과들이 있다면 칭찬하고 격려하되, 그것은 오직 우리를 향한 주님의 헤세드였음을 고백하기를 원합니다. 또한 우리의 이기심과 연약함들이 혹 발견된다 하더라도 정직하게 직면하고, 2023년 다시 인자를 사랑하기로 함께 결단하고 용기를 북돋는 시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그래서 한 걸음 더 겸손하게 주님과 함께 걸어가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사랑하는 동역자님들을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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