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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립(CLeaF) 32호 성경적 법학 연구 입문 (4)

기독법률가회 0 1301

          CLF 클립(CLeaF) 32    

 

 

성경적 법학 연구 입문 (4)


* CLF 미션 스테이트먼트는 그 목표(GOAL)의 하나로 법률전문직과 기독신앙의 학문적 · 실천적 통합을 들면서 구체적 기준(STANDARD)으로, (1) 성경적 법학에 대한 연구와 교육, (2) 법률직에 대한 기독교 세계관적 이해 정립, (3) 실무 법 해석 · 적용의 성경적 관점 계발, (4) 성경적 법학 관련 모임 개최 · 책자와 논문 발간 · 필자 개발과 지원 등의 활동을 정하고 있습니다. 최근(2023. 2. 11.) 기독법학회 창립을 계기로. 위와 같은 활동에 더 많은 관심과 참여가 있기를 바라며, 성경적 법학 연구에 대한 기본적 내용을, 종전 전국대회의 성경적 법학 연구 분야 선택강의 강의안을 중심으로, 몇 회에 걸쳐 소개합니다.



1. 법이란 무엇인가?

- 개혁주의 사상가들에게 빌려와서

화란의 기독교 철학자이며 법학자인 도예베르트는 이라는 틀로 종교개혁 사상을 재해석한 것으로 유명하다. 종교개혁 사상의 핵심 중의 하나가 바로 피조물 전체에 대한 하나님의 절대 주권인데, 그는 법이라는 틀이야말로 이것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 하나님 주권의 절대성과 주어진 법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설명하는 방편 중의 하나는 하나님은 피조물들과 어떻게 다르신 분이신가를 살펴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피조물들과 어떻게 다른가? 신학적으로 하나님은 무한하신 분으로 다른 피조물은 유한한 존재로 구분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법이라는 기준으로 구분할 수도 있다. 하나님만이 자율적 autonomous이시고 다른 피조물은 타율적 heteronomous이다.

법 위에 계신 분은 하나님 한 분뿐이시며, 하나님만이 궁극적인 의미에서 법의 제정자이시다. 따라서 하나님의 성품에 합한 것이 옳은 것이고 그에 반하는 것이 악한 것이다. 따라서 내가 곧 법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분은 하나님 밖에 안 계신다. 주권이란 명령을 내리는 자격, 자기를 제외한 모든 자를 그 명령에 복종시킬 수 있는 자격을 의미한다면, 하나님의 주권만이 절대적이고 다른 주권들은 그로부터 위임된 것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모든 피조물에게 법은 언제나 주어진 것이다.

이러한 법의 타율성을 부정하는 것은 하나님과 인간의 경계를 허무는 것이고 인간이 자율적이 되려는 것으로 타락의 핵심이다. 선악과의 사건이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는 명령은 선과 악의 기준은 하나님 자신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인데, 이러한 명령을 어기고 선악과를 따먹은 것은 이제 내가 스스로 선과 악을 결정하겠다.”'선언인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타율적인 존재가 되기를 거부했다고 해서 진정한 자율성을 획득하는 것은 아니다. 본질적으로 피조물은 자신이 어떻게 생각하든지 간에 타율적인 존재, 즉 로마서의 표현대로 하자면, 아무도 섬기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의의 법에 종노릇 하지 않기로 작정하면 내가 스스로 법이 되는 것이 아니라 죄의 법의 종노릇 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자율성의 영역에서 하나님을 제거하게 되면 인간이 자율적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 거짓 우상, 이데올로기를 가져다 놓는다. 그다음부터는 하 나님의 성품이 선과 악을 구별하는 기준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우상, 이데올로기가 무엇이 선이며 무엇이 악인지 결정하게 된다. 우상과 이데올로기는 자기가 설정한 일정한 목표에 봉사하는 것은 선이라고 규정하고 무엇이든 그 목적에 장애가 되는 것은 반역자로 규정한다.

이렇게 피조물은 근본적으로 타율적인 존재이고, 법이란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것이라면 그 법은 부정적인 의미일 수 없다. 법은 우리에게. 외부에서 주어진 것이지만 우리에게 딱 맞는 것이라고 해야 한다. 우리의 참된 구조 (structure)나 목적에 부합하는 그러한 것이라고 해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법과 자유의 관계에 대해서 진정한 법은 자유의 속박이 아니라 조건으로 봐야 한다. 법의 지배는 구속이 아니라 자유롭고 건강한 삶을 가능하게 해준다고 해야 하는 것이다.

. 하나님 주권의 보편성과 모든 영역에 적용되는 법

우리는 사도신경에서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믿는다고 고백한다. 여기서 지()는 눈에 보이는 것들을 대표하고 천()이란 천사들이나 국가나 가족 같은 제도들을 포함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대표한다고 볼 수 있다. 창조의 범위는 요한복음 1:13(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 된 것이 없느니라)과 골로새서 1:15-16(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아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에서처럼 모든 것이라고 해야 한다. 그런데 이렇게 만드신 모든 것들을 하나님은 그냥 내버려 두시지 않고 계속 지탱하시고 보존하시고 지배하신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어떻게 만드신 우주 전체를 다스리시는가? 만물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행위를 표현하기 위해서 법이라는 용어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모든 피조물을 위해 법을 제정하신다. 그는 법으로 세계를 다스리시고 모든 사물들은 그 법에 따라 살고 움직이고 존재하게 된다. 법을 이런 의미로 사용할 때 법은 태초부터 있었던 세계와 인간의 삶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을 가리킨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자신의 법을 우주에 부과하시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매개자 없이 직접 그렇게 하시거나 사람의 책임 있는 관여를 통해 간접적으로 그렇게 하신다. 마치 통치자인 어떤 인간이 어떤 일은 자기 손으로 하고 어떤 일은 신하들에게 명령을 내리듯이 하나님도 그렇게 하신다. 하나님의 법 지배는 비인간적인 영역에서는 직접적이고 문화와 사회 안에서는 매개적이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두 가지 통치 방식에 대응하는 법이 자연법칙과 규범 이다. 그러나 이러한 자연법칙과 규범 사이에는 중대한 차이가 있다. 자연법칙에는 모든 피조물이 순종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규범에 대해서는 그 수범자인 사람에게 책임이 따른다. 순종할 수도 있고 불순종할 수도 있는 것이다. 자연법칙과는 달리 규범은 복잡하다. 거기에는 그것을 성취하도록 부름을 받은 인류가 자신의 풍부한 재능과 책임 있는 상상력을 발휘하여 채워야 할 여백이 많이 남아 있다. 떨어지는 돌은 인력법칙을 따라야 할 책임이 없고 독수리가 새끼를 양육할 때 하나님의 규례를 순종해야 할 책임이 없다. 돌은 필연적으로 순종하고 독수리는 본능적으로 반응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은 인격적인 책임을 행사해야 한다.

이렇게 하나님의 법은 비인격적인 피조물뿐 아니라 인간 사회의 구조와 예술의 세계, 경영과 상업까지 미친다. 인간의 문화는 그 전체가 규범 지어져 있다. 모든 곳에서 우리는 한계와 적절성과 표준과 기준을 발견한다. 인간사의 모든 영역에서 일을 행하는 옳은 방식과 옳지 않은 방식이 있는 것이다. 앞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결혼제도(4:3-4)나 국가 제도(13:1-2) 같은 것들 역시 하나님의 피조물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이러한 제도에 적용되도록 주어진 법이 존재하는 것이다. 교회나 기업체, 학교 같은 현대적인 제도도 마찬가지의 논리가 적용된다. 피조된 어느 한 영역도 법으로 표현되는 하나님의 주권에서 벗어나는 곳은 없는 것이다.

 

 

(다음 호에 계속)

 

- 김종철(‘어떤바람농장농부, 전 공익법센터 어필 대표, CLF 연구위원장), 법의 성경적 기초(2013년 제5회 전국대회 가이드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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