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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립(CLeaF) 35호 죽음이 있던 자리에 빛이 있었다 (1)

기독법률가회 0 1427

            CLF 클립(CLeaF) 35    


죽음이 있던 자리에 빛이 있었다

(feat. 이반 일리치의 죽음) (1)

우미연 변호사*


이 글은 2023. 3. 9. CLF 비전센터에서 온·오프라인으로 진행된 CLF 독서모임(대상도서 :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에서 필자가 책을 읽고 나눈 일부 소감을 기반으로 필자가 이를 수정, 보완하여 작성한 글입니다. 3회에 걸쳐 나누어 싣습니다.

 

1. 이반 일리치의 마지막 모습

이반 일리치는 죽기 전 사흘 밤낮 내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끔찍한 비명을 외쳐댔다. 살고 싶고 정말 살고 싶다며 생을 간절히 부여잡은 채 놓지 못하던 그는, 자신이 살면서 추구해 온 모든 게 거짓이고 기만이었으며 자신이 스스로 눈을 가려 삶과 죽음을 보지 못하게 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자, 온갖 증오심과 육체적 고통에 괴로워하면서 나락으로 굴러떨어졌다. 지난 삶에 대한 정당화는 그를 더욱 옭아매었고 이 점이 그를 제일 힘들게 했다. 결국, 그는 앞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했던 기차가 실제로는 뒤로 가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 기억을 떠올리며, 자신의 인생 역시 이와 흡사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반 일리치는 이제라도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지만 쉽게 답을 찾지 못한다.

그가 사망하기 한 시간 전, 조용히 방문을 열고 들어와 아버지의 침대 곁으로 다가온 중학생 아들을 향해 그는 절망적으로 울부짖으며 필사적으로 두 팔을 내저었고 그의 손이 아들의 머리에 부딪혔다. 아들은 그의 손을 잡아 자신에 대고 울음을 터뜨렸다. 바로 이 순간 이반 일리치는 나락으로 굴러떨어져 빛을 보았다. 그는 지금까지 자신이 살아온 인생이 그래서는 안 되는 삶이었지만 아직 그것을 바로잡을 수 있으며 바로잡아야만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때 누군가 그의 손에 입을 맞추는 것이 느껴졌고, 눈을 떠보니 아들이었다. 아들이 불쌍했다. 곁으로 다가온 아내를 바라보았고 아내도 안쓰러웠다. '그래, 내가 이들을 힘들게 하고 있어. 다들 불쌍해. 하지만 내가 죽으면 좀 편해질 테지'. 그는 아내에게 "데리고 가... 안쓰러워... 그리고 당신도..." 라고 말했고, '용서해 줘'라는 말을 덧붙이고 싶었다. 그 순간 이제까지 그를 괴롭히면서 마음 속에 갇혀 있던 것들이 쏟아져 나오며 '저들이 불쌍해. 저들이 고통받지 않게 해주어야 해. 저들을 해방시켜 주고 나 자신도 이 고통에서 해방되어야 해'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자 그동안 익숙해진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더 이상 찾을 수 없게 되었다. 두려움은 이제 없었다. 죽음이란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죽음이 있던 자리에 빛이 있었다. 그는 갑자기 큰 소리로 "그래 이거야! 이렇게 기쁠 수가!" 하고 외쳤다. 이 모든 것들은 한순간에 일어났고 그 순간의 의미는 이후 결코 바뀌지 않았다. 사경을 헤매는 것으로 보였던 그는 마음 속으로 이렇게 되뇌며 눈을 감았다. '죽음은 끝났어. 더 이상 죽음은 없어.'

2. 죽은 채 살아가는 사람 & 죽음을 죽이고 참 생명을 사는 사람

​​ 삶과 죽음이란 무엇일까. 생명과 사망은 무엇일까. 톨스토이의 중편 소설 <이반 일리치의 죽음>에는 '살아있으나 죽은 사람이 있고, 죽었으나 살아있는 사람이 있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는 것 같다. '살았으나 죽었고 죽었으나 사는' 이 기막힌 역설을 이해할 수 있는가. 오랜 기간 질병의 고통과 죽음에 대한 공포에 시달리던 이반 일리치는 마지막 숨을 거두기 전, 드디어 아픔과 절망과 두려움에서 해방되면서 마음 속으로 되뇌었다. "죽음은 끝났어. 더 이상 죽음은 없어." 그 말의 의미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 요한복음 5:24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 로마서 5:12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 로마서 5:18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한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 로마서 6: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 고린도전서 15:21~22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성경에서는 타락한 사람, 죄악에 빠진 사람의 상태를 '사망, 죽음'의 상태로 표현한다. 그리고 그 반대의 경우, 즉 죄로부터 구원받은 사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다 여겨진 사람의 상태를 '생명, , 영생'의 상태로 표현한다. 특히 이러한 대비는 천지창조, 인간창조 및 인간타락의 기원을 다루는 창세기에서부터 확인할 수 있다.

사람을 창조하신 이후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창세기 2:16~17)" 그리고 이후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믿지 않고) 오히려 다스리라고 명령한 피조물()의 말을 듣고서(믿고서) 선악과를 먹은 최초의 사람은 결국 죽음을 맞이하였다. 죄에 대한 결과로 영혼과 육체가 분리되는 물리적인 죽음의 종국이 예견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네가 먹는 날에 반드시 죽으리라'고 하신 말씀에 따라 선악과를 먹은 최초의 사람은 그날에 죽었다. 그 영혼이 죽었다. 영혼의 죽음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죄짓기 전후 사람의 존재에 대한 성경의 언급에서 그 단서를 찾아볼 수 있다.

하나님께서 천지창조 마지막 단계에서 사람을 창조하신 사건에 대해 성경은 이렇게 서술한다(창세기 2:7).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개역개정>

'Then the Lord God formed a man from the dust of the ground and breathed into his nostrils the breath of life, and the man became a living being.' <NIV>

'And the LORD God formed man of the dust of the ground, and breathed into his nostrils the breath of life; and man became a living soul. <KJV>

이후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께서 금기하신 선악을 알게 되는 나무의 열매를 먹은 후 회개하지 않자,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창세기 3:19).

'너는 이니 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개역개정>

'for you are dust, and to dust you shall return.' <NIV>

'for dust thou art, and unto dust shalt thou return.' <KJV>

하나님의 생기(생명의 숨, a breath of life)가 들어와 생령(a living being, a living soul)이 된 사람, 하나님과 분리되어 하나님의 생기를 잃고 단지 흙(dust)이라는 존재로 전락하게 된 사람. 위 창세기 말씀은 죄를 짓기 이전의 사람과 죄를 지은 이후 사람은 각기 본질적으로 다른 존재임을 시사한다. 사람은 영생하지 못하고 결국 죽게 된다는 의미와 더불어 흙이라는 원료로 사람을 만들었으니 사람이 죽으면 썩어서 다시 흙으로 돌아간다는 자연적 물리적 의미가 있겠지만, 썩어서 흙이 되는 것은 사람 외의 다른 피조생명체와 다름없으니 그것이 전부는 아닐 것이다. 아마도 위 본문의 진정한 함의는 바로 '하나님의 생기가 사라진 사람은 더 이상 살아있는 생령의 존재가 아니라, 그저 흙과 같이 생명력 없는 죽은 존재가 되었다'는 영적 의미일 것이다. 더욱이 하나님으로부터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게 된 뱀이 살아있는 동안 바로 이 흙(dust)을 먹게 되었다(창세기 3:14)는 것은, 결국 '영적으로 죽은 존재(dust)가 된 사람은 뱀으로 표현되는 사단의 먹잇감이 될 수밖에 없다'는 의미가 아닐까. (feat. 교회를 부탁해 - )​​

- 마가복음 12:27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라..

- 히브리서 11:4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거하심이라

저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오히려 말하느니라.

- 사도행전 26:18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

- 골로새서 1:13~14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사함을 얻었도다.

 

누구나 숨을 쉬며 살지만, 호흡한다고 해서 생각한다고 해서 몸을 움직인다고 해서 다 살아있는 것은 아니다. 모두가 다 살아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중에는 그저 무생물인 흙과 같은 존재로 실상은 죽은 사람이 있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서 죽음을 죽이고 하나님의 생기(생명의 숨)를 다시 얻어 참 생명을 사는 사람(생령, 살아있는 영혼)이 있다. 또한, 그 반대로 호흡이 끊긴 모두가 죽은 것처럼 보이지만, 그중에는 이미 죽은 채 살아가다가 결국 영원한 사망을 맞이한 사람이 있고, 믿음 안에서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사랑의 나라에서 영원히 살아있는 존재로 영생하는 사람이 있다. 결국, 살았으나 죽은 사람이 있고, 죽었으나 산 사람이 있는 것이다. 나는, 우리 공동체는, 우리 한국교회는 하나님의 생기로 진정한 참 생명을 살고 있는가 아니면 하나님의 생기를 잃고 죽은 상태로 마치 영적 좀비처럼 살고 있는가.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 산 사람의 하나님이듯이, 나와 우리는 죽더라도 여전히 영원한 하나님 안에서 살아있는 사람이 될 수 있는가. 아벨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오히려 말하듯이, 나 역시, 우리 역시 죽음 이후에도 그 믿음으로써 말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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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호에 계속)

 

* 우미연 변호사 : 법률사무소 우리. CLF 통일법센터 룩(LOOK : Lawyers Of One Korea)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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