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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립(CLeaF) 38호 미국의 기독법학연구 동향에 대한 고찰 (1)

            CLF 클립(CLeaF) 38    


미국 기독법학연구 동향에 대한 고찰 (1) 


                                                        김대인 교수*

                     

*이 글은 CLF 연구위원장을 역임한 김대인 교수님(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이 미국 내의 법과 기독교간의 관계를 연구하는 기독법학연구의 현황을 주체, 분야, 쟁점으로 나누어 상세히 고찰한 논문(이화여자대학교 법학논집 제26권 제4호 통권 78호, 2022. 3. 게재)을 분량, 가독성을 고려하여 각주와 일부 내용을 생략한 것을 제외하고는 거의 그대로 옮겨 실은 것입니다. 여러 기독교종파와 각기 다른 신학적 배경을 바탕으로 다양한 법학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는 미국 내 기독법학연구의 현황을 살펴보는 것은 기독법학연구의 전체상을 조감하게 할 뿐 아니라 아직 초입 단계인 국내 기독법학연구에 여러 가지 의미 있는 시사점을 제공해 줄 것입니다. 각주를 포함한 전문(全文)은 첨부한 파일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크게 주체, 분야, 쟁점으로 나누어 3회에 걸쳐 싣습니다. 

I. 서론


 법과 종교는 인간의 역사에서 지속적으로 긴밀한 관계를 맺어왔다. 서양에서 종교가 지배했던 중세시대는 물론이고 종교의 힘이 약화된 근대 이후에도 법은 끊임없이 종교와 길항관계를 맺으면서 발전해왔다. 형식적으로만 보면 법이 주로 인간의 외면세계(행동)를 다루고, 종교가 주로 인간의 정신세계(생각)를 다룬다는 점에서 양자가 구분된다고 볼 수도 있지만, 인간의 행동은 생각의 산물이기 때문에 양자가 긴밀하게 연결될 수밖에 없다는 점은 어떻게 보면 자연스럽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법에 대한 논의를 함에 있어서 종교적인 관점이 관여하는 것을 꺼리는 경향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이는 종교적인 관점은 어디까지나 사적인 영역에 불과하기 때문에 법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는 공적인 영역에서 종교적인 관점은 배제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버마스(Harbermas)가 밝히고 있다시피 공적인 영역에서 본인의 종교적 배경을 가지고 담론에 참여하는 것을 배제할 이유는 없다. 이것을 허용하는 것이 다원화된 사회에 오히려 부합하는 것이라고 하겠다. 다만 이처럼 본인의 종교적인 관점을 토대로 법에 대한 담론을 펼쳐나감에 있어서는 같은 종교를 갖지 않는 다른 사회구성원에게도 설득력이 있는 주장을 어떻게 제시할 것인가 하는 점이 중요한 과제가 된다. 

 이처럼 법과 종교의 긴밀한 관계를 반영하여 미국, 영국, 독일 등에서는 법과 종교, 특히 법과 기독교간의 관계에 대해서 많은 연구를 축적해오고 있다. 우리나라 법학계에서도 가톨릭 자연법사상, 종교개혁의 법사상, 법사학, 법조윤리, 생명의료법, 차별금지 및 동성애, 양심적 병역거부, 종교의 자유, 교회법 및 교회분쟁, 성경의 법(biblical law), 인권법, 북한인권과 통일법 등 다양한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으나, 주요 외국에 비해 충분한 연구가 이루어졌다고 보기는 힘들다.

 이 글은 ‘미국’에서의 ‘기독법학연구’의 현황에 대한 지도를 그리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처럼 연구범위를 정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이 글이 ‘미국’을 대상으로 하는 것은 미국에 다양한 기독교 종파들이 존재하고, 이들이 세운 교육기관들을 중심으로 다양한 기독법학연구가 이루어지고 있어서 기독법학연구의 전체상을 조감하는 데에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미국은 학제적(interdisciplinary) 법학연구의 전통이 강하고 법학과 신학(또는 기독교철학)간에 다양한 교류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에서도 검토의 가치가 크다.

 둘째, 이 글은 ‘기독’법학연구를 대상으로 하는데, 다양한 종교 중에서도 기독교에 초점을 맞추는 이유는 근대 이후 우리나라에 지배적인 영향을 미친 서양법(대륙법과 영미법)의 전통과 가장 맞닿아 있는 종교가 기독교이기 때문이다. 기독교라고 할 때에는 가톨릭(Catholic), 개신교(Protestant), 정교회(Orthodox) 등 다양한 종파가 포함될 수 있는데, 이 글에서 ‘기독법학연구’(Christian Legal Studies 또는 Christian Legal Scholarship)라고 할 때에는 이러한 다양한 종파들을 포괄하는 넓은 개념으로 사용하고 있다. 

 셋째, 이 글은 기독‘법학’연구를 대상으로 한다. 기독법학연구라고 할 때에는 법과 기독교간의 관계를 연구하는 것을 말하는데, 이러한 연구는 법학자 및 비법학자(신학자 또는 기독교철학자) 모두에 의해서 이루어질 수 있다. 하지만 이 글에서는 ‘법학’적인 측면에 초점을 맞추기 위해서 법학자(또는 법률실무가)들의 연구를 주로 다루도록 하고, 비법학자들의 연구는 최소한의 범위에서만 살펴보도록 한다. 

 이를 위해서 미국 내 기독법학연구의 현황을 주체, 분야, 쟁점으로 나누어서 살펴보도록 한다. 우선 주체에서는 미국에서 기독법학연구를 하고 있는 주된 기관(학교, 단체) 및 학자(또는 법률실무가)를 살펴보고(II), 분야에서는 1) 자연법, 2) 법실무 및 법조윤리, 3) 종교의 자유 및 국가-종교간의 관계, 4) 법사학 등으로 나누어서 검토하며(III), 쟁점에서는 1) 신학, 2) 사랑의 계명, 3) 인권으로 나누어서 살펴보도록 한다(IV). 이어서 미국 내 기독법학연구의 향후 과제와 우리나라에 주는 시사점을 찾아보고(V), 마지막으로 이상에서의 논의를 토대로 일정한 결론을 제시해보도록 한다.(VI)


II. 미국 내 기독법학연구의 주체


1. 대학


 미국 내에서는 다양한 종교계 대학들이 존재하고 이들 대학들에는 로스쿨이 설치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가톨릭계열의 로스쿨로는 노트르담(Notre Dame), 세인트존스(St. John), 로욜라(Loyola), 세인트토마스(St. Thomas), 시튼홀(Seton Hall), 빌라노바(Villanova), 아메리칸(American) 등이 있고, 개신교계열의 로스쿨로는 에모리(Emory), 페퍼다인((Pepperdine), 리젠트(Regent), 캠벨(Campbell), 리버티(Liberty), 트리니티(Trinity), 오크 부르크(Oak Brook) 등이 있다.

 이들 로스쿨에는 법과 종교간의 관계를 연구하는 연구센터가 설치되어 있거나, 법과종교에 관련된 저널을 발간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대표적인 것들만 들어보면 우선 에모리 로스쿨에 설치되어 있는 ‘법과 종교 연구센터’(Center for the Study of Law and Religion)를 들 수 있다. 이 연구센터에서는 법과 종교(기독교에 제한되지 않지만 기독교가 가장 중요하게 다루어진다)의 관계에 관한 다양한 단행본을 출간하고 있고, 관련 학술지(Journal of Law and Religion)를 발간하고 있다. 이 연구센터의 센터장은 존 위티(John Witte) 교수이다.

 다음으로 페퍼다인 로스쿨에 설치되어 있는 ‘법, 종교, 그리고 윤리를 위한 누트바르 센터’(Nootbaar Institute For Law, Religion, and Ethics)도 법과 종교(기독교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간의 관계에 관한 다양한 세미나를 개최하고 있다. 이 센터의 설립자는 로버트 코크란(Robert Cochran) 교수이다. 그는 기독법학자들의 모임인 기독법학교수협회(Law Professors’ Christian Fellowship)의 설립을 주도하기도 하였으며, 기독법학자들의 연구성과를 엮은 주요저서들을 대표편집하기도 하였다.

 세인트존스 로스쿨에서는 ‘법과 종교 센터’(Center for Law and Religion)를 설치하고 가톨릭 법사상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학술지(Journal of Catholic Legal Studies)를 발간하고 있다. 이 센터에서는 포럼을 개최하여 법과 종교(특히 가톨릭)의 관계에 관한 다양한 논의가 이루어지도록 하고, 팟케스트(Legal Spirits)를 통해 기독법사상이 대중에게도 전달되도록 노력하고 있다.

 이들 종교계 대학에는 다수의 기독법학자들이 소속되어 연구활동을 하고 있거나 한 바 있다. ··· 그러나 기독법학자들이 이들 종교계 대학에만 소속되어 있는 것은 아니며, 그 외의 일반대학 로스쿨에도 기독법학자들이 존재한다. ··· 이들 기독법학자들은 다양한 컨퍼런스를 통해서 교류하고 있는데 대표적으로는 매년 1월에 열리는 미국로스쿨연합회(Association of American Law Schools: AALS) 컨퍼런스 직후에 개최되는 기독법학교수협회 컨퍼런스를 들 수 있다. 페퍼다인 로스쿨의 ‘법, 종교, 그리고 윤리를 위한 누트바르 센터’에서도 매년 컨퍼런스를 개최하여 기독법학자들이 교류하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으며, 시카고 대학에 설치된 Lumen Christi Institute에서는 주로 가톨릭 법학자들이 참여하는 컨퍼런스를 수시로 개최하고 있다.


2. 단체


 미국에서 기독법학연구는 대학에 소속된 학자들에 의해서만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아니며 다양한 단체에서도 기독법학연구와 관련된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다. 대표적인 단체를 몇 가지만 예로 들면 우선 개신교 기독변호사들의 모임인 Christian Legal Society(이하 CLS)를 들 수 있다. 이 단체에서는 기독로스쿨생 및 기독변호사들의 교류를 도모하고, 종교의 자유 확산을 위한 공익소송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등 시민단체의 역할도 담당하고 있다. 또한 CLS는 연구기관(Institute for Christian Legal Studies)을 설립하고 팟케스트(Cross & Gabel Podcast)를 통해 다양한 기독법사상가들(법학분야에 제한되지 않는다)의 생각을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CLS는 2011년부터 학술지(Journal of Christian Legal Thought)도 1년에 두 차례 발간하고 있다. 2022년 현재 이 학술지의 대표편집인(editor-in chief)은 마이클 슈트(Michael Schutt) 교수이다. 이 학술지에 실린 글들은 3페이지에서 10페이지 내외로 매우 짧고, 학자들뿐만 아니라 법률실무가들의 글들도 많이 실린다는 점이 특징이다. 특히 CLS 산하 ‘법과 종교의 자유 센터’(Center for Law and Religious Freedom)의 센터장을 맡고 있는 킴 콜비(Kim Colby) 변호사의 글들이 자주 실리고 있다. 이는 CLS가 역점을 두고 있는 종교의 자유 운동을 확산시키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보인다. 

 다음으로 ‘러더포드 인스티튜트’(Rutherford Institute)를 들 수 있다. 이 단체는 17세기의 종교개혁사상가였던 사무엘 러더포드(Samuel Rutherford)의 이름을 사용하여 설립되었는데 종교의 자유를 비롯한 자유의 확산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 단체의 대표는 존 화이트헤드(John Whitehead) 변호사인데, 그는 저명한 기독교변증가인 프란시스 쉐퍼(Francis A. Schaeffer)와 함께 활동했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일련의 저서를 통해 종교의 자유를 비롯하여 개인의 자유가 억압되고 있는 미국 내 현실에 대해서 지속적으로 비판적인 견해를 제시하고 있다.

 ‘법과 종교의 자유 센터’나 ‘러더포드 인스티튜트’는 ‘기독교보수법률단체’(Christian Conservative Legal Organization: CCLO)에 속하는 것으로 평가받는다. 기독교보수법률단체가 주로 다루는 이슈로는 1) 종교의 자유와 정교분리, 2) 전통적인 결혼과 가족, 3) 삶의 경건성 등이다. 이들은 1980년대와 1990년대에 등장하기 시작하는데, 이는 낙태권이나 동성애자의 인권을 옹호하는 인권단체인 American Civil Liberties Union의 활동에 반대하면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CLS와 협력관계에 있는 단체로 Advocates International(AI)를 들 수 있다. 이 단체는 1991년에 사무엘 에릭슨(Samuel Erricson) 변호사가 소련의 붕괴를 계기로 사회주의권에서 새로운 법질서 정립이 필요하다고 인식하면서 설립한 단체인데, 이 단체는 종교의 자유가 각국에서 보호되도록 하고, 각국의 기독법률가들이 교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AI에는 ‘기독법학연구소’(Institute of Christian Legal Studies: ICLS)가 설치되어 있고 여기에서는 기독법사상 연구활동을 하고 있다.

 이 외에도 인권운동과 관련한 수많은 단체가 미국 내에 존재하는데, 이 중에서 기독교적인 배경을 가지고 있는 대표적인 단체로 International Justice Mission(IJM)을 들 수 있다. 이 단체의 설립자는 게리 하우겐(Gary Haugen) 변호사인데, 그는 미국 국무부 소속의 변호사로서 UN 르완다 대량학살 수사팀을 이끌었던 경험이 계기가 되어 국제인권운동에 헌신하는 단체를 설립하였다. 그는 기독교정신에 입각하여 전세계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인권유린에 저항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점을 그의 저서를 통해 역설하고 있다. 최근 저서에서는 개도국의 빈곤문제와 폭력문제는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 이러한 그의 주장은 국제개발협력과 국제인권운동이 함께 가야 함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인권문제에 초점을 맞춘 또다른 기독교 법률단체로 Equal Justice Initiative를 들 수 있다. 이 단체의 설립자는 브라이언 스티븐슨(Bryan Stevenson) 변호사이다. 그는 자신이 변론한 수많은 공익소송사례를 토대로 미국 형사사법제도의 문제점을 기독교적 관점에서 진단한 책을 발간하였다. 이 책은 영화화되기도 하였다.

 다음으로 재소자의 인권을 위한 기독교단체로 Prison Fellowship을 들 수 있다. 이 단체는 형사사법의 정의를 추구하고, 재소자들의 사회복귀를 지원하고 있다. 이 단체의 설립자는 찰스 콜슨(Charles Colson) 변호사인데, 닉슨 행정부에서 일하다가 워터 게이트 사건으로 수감되었던 그의 경험이 Prison Fellowship을 설립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는 자신의 저서에서 미국 내에서 더 많은 교도소가 생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범죄는 계속해서 늘어나는 현상을 비판하며 회복적 사법(restorative justice)이 필요하다는 점을 주장하고 있다. 개신교인인 찰스 콜슨은 가톨릭, 정교회와의 일치를 위한 활동도 펼쳤는데 그 결과 가톨릭 법학자인 로버트 조지와 함께 2009년도에 ‘맨하탄 선언: 그리스도인의 양심으로의 부르심’(Manhattan Declaration: A Call for Christian Conscience)을 기초하기도 했다.

 평화로운 분쟁해결을 추구하는 기독교단체인 Peacemaker Ministries도 빠뜨릴 수 없다. 이 단체의 설립자는 켄 산데(Ken Sande) 변호사인데, 그는 자신의 저서에서 교회내 분쟁 등 기독교인들의 분쟁이 세속법정으로 가지 않고 성경적 원리에 기반한 조정(conciliation)을 통해 해결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주장하고 있다.


                           (다음 호에 계속)


* 김대인 교수 : 법무법인 소명 변호사, 한동대 교수, CLF 연구위원장 역임.

                현재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기독법사상 강독모임 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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