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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립(CLeaF) 39호 미국의 기독법학연구 동향에 대한 고찰 (2)

기독법률가회 0 1193

            CLF 클립(CLeaF) 39    


미국 기독법학연구 동향에 대한 고찰 (2) 


                                                        김대인 교수*

                     

*이 글은 CLF 연구위원장을 역임한 김대인 교수님(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이 미국 내의 법과 기독교간의 관계를 연구하는 기독법학연구의 현황을 주체, 분야, 쟁점으로 나누어 상세히 고찰한 논문(이화여자대학교 법학논집 제26권 제4호 통권 78호, 2022. 3. 게재)을 분량, 가독성을 고려하여 각주와 일부 내용을 생략한 것을 제외하고는 거의 그대로 옮겨 실은 것입니다. 여러 기독교종파와 각기 다른 신학적 배경을 바탕으로 다양한 법학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는 미국 내 기독법학연구의 현황을 살펴보는 것은 기독법학연구의 전체상을 조감하게 할 뿐 아니라 아직 초입 단계인 국내 기독법학연구에 여러 가지 의미 있는 시사점을 제공해 줄 것입니다. 각주를 포함한 전문(全文)은 첨부한 파일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크게 주체, 분야, 쟁점으로 나누어 3회에 걸쳐 싣습니다. 

                           (지난 호에 이어)


III. 미국 내 기독법학연구의 분야


1. 개관


 미국 내 기독법학연구의 현황에 대해서 논쟁이 발생한 바 있다. 2008년에 데이비드 스킬은 “기독법학연구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라는 논쟁적인 제목의 논문을 통해 미국 내 기독법학연구가 전반적으로 깊이가 없음을 비판한 바 있다. 그는 하버드, 콜럼비아, 예일, 미시간, 시카고, 일리노이, 펜실베니아, 버지니아, 캘리포니아 등 주요 로스쿨 학술지에 기독법학연구를 반영한 논문이 실린 비중이 매우 낮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그나마 어느 정도의 성과를 인정할 수 있는 기독법학연구의 분야로 1) 자연법(과 국제인권법), 2)기독법실무(Christian lawyering)과 법조윤리(legal ethics), 3) 미국 수정헌법 제1조와 교회-국가 이슈, 4) 기독법역사 등 네 가지를 들고 있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서는 바로 반박이 이루어졌다. 데이비드 코딜은 위와 같은 스킬의 주장이 기독법학연구의 현황을 심각하게 왜곡한 것이라고 하면서, 스킬이 지적한 4가지 분야 이외에도 법의 종교적 기원, 종교와 법의 관계, 정의 연구, 조세, 낙태논쟁, 가족법, 교육, 형법, 평등, 계약법, 회사법, 이민법, 전쟁, 환경법, 가톨릭 사회사상, 사법부, 불법행위, 사형, 다원주의 연구, 성경연구, 과학, 페미니스트 법이론, 대체적 분쟁해결(ADR), 경제학, 기독법학이론 등 다양한 분야에서 풍성하게 기독법학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이러한 현황은 오히려 “기독법학연구의 놀라운 다양성”이라고 이름 붙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두 상반되는 주장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중도적인 견해가 제시되고 있다. 바바라 아마코스트(Babara Armacost)는 코딜이 언급한 풍부한 기독법학연구성과들이 대부분 종교 관련 학술지나 종교계 로스쿨에서 발간하는 학술지에 게재된 점을 지적한다. 그러나 주요 로스쿨 학술지에 게재가 되지 않았다고 해서 기독법학연구로서 가치가 떨어진다고 볼 것은 아니라고 본다. 기독법학연구의 목적을 어디에 둘 것인지에 따라 두 학자의 대립되는 견해가 모두 맞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즉, 기독법학연구를 비기독인들도 설득하는 데에 초점이 있다면 주요대학 로스쿨에 논문이 실리도록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지만, 기독교인들에게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는 데에 초점이 있다면 종교 관련 학술지나 종교계 로스쿨에서 발간하는 학술지에 실리는 것도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논쟁이 있지만 스킬이 제시한 4가지 분야는 기독법학연구가 심도 있게 이루어지고 있다고 학자들이 공통적으로 보는 최소한의 분야로 이해해볼 수 있다. 따라서 이하에서는 미국 내 기독법학연구의 대상을 이 4가지 분야로 나누어서 소개하도록 한다.


2. 자연법 및 국제인권법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의 자연법사상을 현대적으로 계승한 대표적인 법학자로 존 피니스를 들 수 있다. 피니스는 그의 주저인 ‘자연법과 자연권’에서 인간의 법제도에 의해서만이 얻을 수 있는 인간의 선(humans goods)이 존재하며, 이러한 제도만이 충족시킬 수 있는 실천적 합당성(practical reasonableness)의 요청이 존재한다고 본다. 따라서 인간에게 무엇이 진정한 선인지, 실천적 합당성에 의해 무엇이 요청되는지를 평가하는 작업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고 본다. 그는 이러한 전제하에 기존의 벤담(Bentham), 오스틴(Austin), 하트(H.L.A Hart) 등의 법실증주의를 비판하면서 새로운 자연법 개념을 주장하는데, 이러한 자연법이론은 선, 인간 사이의 정당한 질서, 그리고 개인적 행위에 대하여 ‘실천적으로 바른 마음자세’(practical right mindedness)를 가질 수 있는 조건과 원리를 밝혀낼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피니스는 7가지의 근본선(지식, 생명, 놀이, 심미, 친교, 실천적 합당성, 종교)이 존재하고 이들은 서로간에 우선순위가 존재하지 않는 가치들이라고 보면서, 인간이 이들 중의 어느 하나의 선이라도 직접적으로 침해하지 않으면 도덕적으로 행동한 것으로 본다. 그는 이러한 자연법개념에 입각하여 출산과 관련된 성행위만이 도덕적이라고 보는 전통적인 가톨릭의 성윤리를 지지하고 이에 따라 낙태, 동성애 등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피니스의 자연법이론이 신의 존재를 반드시 전제로 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의 자연법사상의 핵심개념인 ‘근본선’, 그중에서도 ‘실천적 합당성’의 개념이 아퀴나스의 자연법사상과 연결되고, 그리고 근본선 중에 하나로 ‘종교’를 들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자연법사상을 가톨릭 사상과 연결하여 보는 것은 자연스럽다고 할 수 있다. 

 아퀴나스의 자연법사상을 현대적으로 계승하고 있는 가톨릭 법학자들로는 피니스 이외에도 로버트 조지(Robert George), 러셀 히팅어(Russel Hittinger) 등이 있다. 로버트 조지는 자연법주의자들은 개인주의(individualism)와 집단주의(collectivism)을 모두 거부하는 인간상을 토대로 한다고 말한다. 개인주의는 인간의 사회성을 배제하는 경향이 있으며, 집단주의는 인간의 웰빙과 존엄성을 무시하고 전체의 이익을 위해 인간을 도구화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는 다른 사람의 웰빙과 존엄성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실천이성의 원리가 우리를 이끌 때 인권이 존재한다고 전제하면서, 정의와 인간에 대한 도덕규범과 같은 자연법의 지식이 신의 계시로부터도 나올 수 있지만 신의 계시를 벗어나서도 나올 수 있다고 본다. 신약성경에서 바울이 이야기했듯이 ‘마음에 심겨진’(written on the heart) 법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전제하에 그는 역사적으로 인간이 노예제도를 폐지하는 데에 성공한 것처럼, 자연법주의자들은 인간의 도덕성의 타락을 가져오는 경향을 되돌이켜 낙태나 염색체를 파괴하는 연구, 존엄사 등으로부터 생명을 보호하고, 남편과 아내의 연합으로 구성된 결혼문화를 다시 회복하는 것에 대한 희망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히팅어는 가톨릭 사회사상의 4가지 기본개념, 즉 인간의 존엄성(dignity of humanity), 보충성(subsidiarity), 연대성(solidarity), 공동선(common good)이 서로간에 정합성을 갖고 있는 개념들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에 의하면 ‘자연인들’(natural persons)과 ‘그룹으로 묶여진 인간들’(group-persons)이 있는데, 이들은 각각 권리와 책임을 보유하면서 서로 다른 존엄성을 가진 존재들이라고 본다. 인간은 사회 속에서 살고자 하는 경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느 하나의 그룹에만 속할 수 없다고 본다. 즉 인간의 본성상 다양한 사회그룹이 존재하게 되며, 따라서 그룹 내에서 발생하는 연대성은 단일한 것이 아니라 다양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A그룹이 B그룹에 관여할 때에는 B그룹의 연대성을 침해해서는 안 되는 보충성의 원리가 작동하게 된다. 그러나 B그룹은 반면에 자신을 다른 그룹과 조화롭게 질서 지울 의무를 지게 되고 이를 통해 공동선을 추구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히팅어의 설명은 19세기에 가톨릭 사회사상이 발전하게 된 역사적 배경, 즉 자본주의의 발전으로 인해 나타난 극단적 개인주의와 전체주의적인 경향을 보이는 사회주의 사이의 제3의 길을 찾고자 했던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가톨릭 사회사상의 기본개념이자 아퀴나스 자연법사상의 핵심개념 중의 하나인 ‘공동선’을 중시하고 있는 가톨릭 법학자로 아드리안 버뮬을 들 수 있다. 그는 『공동선 헌정주의』(common good constitutionalism)라는 저서를 통해 고전적 법전통(classical legal tradition), 즉 로마법, 교회법, 시민법으로 구성된 보통법(ius commune)의 전통을 회복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는 아퀴나스의 법이론에 근거하여 법은 공동선(common good)을 실현하기 위한 이성의 규칙이기 때문에 헌법을 가능한 한 공동선의 개념에 부합하게 해석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는 공동선이란 ‘잘 정돈된 정치공동체의 번영’을 의미한다고 보면서, 여기에는 평화, 정의, 풍요, 건강, 안전, 경제적 안정, 연대성, 보충성 등이 포함된다고 본다. 이러한 입장에서 버뮬은 헌법해석방법론의 두 가지 대립되는 견해, 즉 입법자의 의도를 중시하는 입장(originalism)과 현재의 사회정책적 필요성을 고려한 합목적적 해석을 중시하는 입장(progressivism)을 모두 넘어서는 방법론을 정초하려고 한다.

 가톨릭 자연법사상을 국제인권분야로 적용시키고 있는 학자로는 메리 앤 글랜든을 들 수 있다. 그녀는 자크 마리땡(Jacques Maritain), 존 코트니 머레이(John Courtney Murray) 등의 가톨릭사상가들의 영향하에 국제인권의 한 내용으로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고자 하는 노력을 국제적으로 펼치고 있다. 그녀는 정치적인 논의과정에서 특정의 권리담론(right talk)이 정체(body politic)의 왜곡의 결과이자, 이러한 왜곡에 기여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즉, 새로운 권리가 지속적으로 추가되고 있는데(동물권 등을 예로 들고 있다), 이것이 무엇을 지향하는지, 다른 권리나 관련된 책임, 또는 일반적인 복지와 어떠한 관계가 있는지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있는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그녀는 이러한 권리담론은 개인주의로 빠지는 경향이 있으며, 환대(hospitality)와 공동체의 보호(care for the community)라는 전통적인 가치를 고려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상에서 볼 수 있듯이 현대에 자연법사상을 주장하는 법학자들은 대부분 가톨릭 배경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개신교에서는 자연법사상에 대해서 전통적으로 부정적인 견해를 취해왔다고 할 수 있는데 이는 아퀴나스의 자연법사상이 인간의 이성에 대해 지나치게 신뢰를 부여하였고, 이는 인간의 죄성에 대한 불충분한 이해에 기반한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개신교의 전통적인 이해를 깨뜨리는 입장이 등장하고 있는데 대표적으로 개신교 신학자인 데이비드 반드루넨을 들 수 있다. 그는 칼뱅도 자연법사상을 받아들였고 이 지점만을 놓고 보면 칼뱅이 가톨릭사상을 비판하지 않았다고 하면서 자연법사상과 ‘두 개의 왕국’(two kingdom theory) 이론을 접목하여 자신의 견해를 발전시키고 있다.


3. 법실무와 법조윤리


 다음으로 법실무(christian lawyering)와 법윤리(legal ethics)와 관련된 분야를 들 수 있다. 이는 기독교신앙을 가진 법률실무가는 법을 어떤 관점에서 바라볼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이러한 관점을 가진 대표적인 학자로는 토마스 쉐퍼를 우선적으로 들 수 있다. 그는 가톨릭 계열인 노트르담 로스쿨의 원장을 지냈고 가톨릭 신앙을 가졌으면서도, 1520년 취리히에서 시작된 애나뱁티스트의 종교개혁운동의 영향을 받았고 그 결과로 ‘용서의 법사상’(jurisprudence of forgiveness)을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용서의 법사상에 입각할 때 다음과 같은 점을 주의 깊게 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첫째, 교회는 용서에 의해서 구성된 공동체이며, 둘째, 이러한 교회는 자신의 구성원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을 위해서 용서의 정치를 해야 하고, 셋째, 예수는 교회에 의해서 예언자와 선지자로 선언된 것이 아니라 통치자로 선언되었기 때문에 교회는 공적 영역과 무관할 수 없고, 넷째, 교회가 선언한 것이 법이 되지 못할 때에는 신약이 말하는 바 세상이 (신에 대한) 반역상태에 있기 때문이고, 다섯째, 교회를 위한 정치와 법사상은 비폭력적인 것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기독법률가들이 이러한 용서의 법사상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일 때 용서의 공동체를 만들고, 도시의 평화를 추구할 수 있다는 주장을 제시하고 있다.

 토마스 쉐퍼는 기독법률가를 위한 법사상은 성경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보면서 나 외의 다른 신을 두지 말라고 한 시내산 언약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본다. 이러한 언약 내용에 따르면 법이 신의 지위를 대신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법은 스스로 우상이 되려는 경향이 있는데 우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인간의 역사를 보면 돈, 국가 등을 우상으로 삼는 경향이 있는데 법 역시 그렇게 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러한 쉐퍼의 견해는 법의 근본적인 한계를 제시하면서 법은 어디까지나 관계회복의 도구가 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해볼 수 있다. 

 이러한 토마스 쉐퍼의 영향을 받은 법학자로 로버트 코크란, 조셉 알레그레티(Joseph Allegretti) 등을 들 수 있다. 코크란은 법실무(lawyering)를 두 가지 관점에서 접근하는데, 하나는 기독교의 일에 대한 관점을 통해서 본 법실무이고, 다른 하나는 아가페적 사랑의 표현으로서의 법실무이다. 우선 기독교의 일에 대한 관점을 통해서 보면 법률실무가는 신의 창조작업에 참여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은 신의 거룩함뿐만 아니라 그의 창조성을 닮도록 부름받았고, 이러한 창조성은 죄로 물든 창조세계를 변혁하는 기초가 된다고 본다.

 다음으로 아가페적 사랑의 관점에서 보면 법률실무는 ‘친구로서의 법률가’(lawyer as friend)의 시각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가 ‘친구로서의 법률가’를 말할 때에는 도덕적인 이슈에 대해서 논의할 수 있는 도덕적 관계를 의미한다고 본다. 이때 법률실무가는 두 가지 극단을 피해야 하는데, 한편으로 법률실무가는 자신의 도덕적 견해를 의뢰인에게 강요해서도 안 되고, 다른 한편으로 의뢰인의 문제를 도덕적 내용을 제거한 순수한 기술적인 문제로만 받아들여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조셉 알레그레티는 변호사와 의뢰인 간의 관계가 단순한 ‘계약적인 관계’(contractual relationship)가 아닌 ‘언약적인 관계’(covenantal relationship)가 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언약은 성경의 곳곳에서 등장하는데 노아 언약, 시내산 언약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언약이 신과 인간 간의 인격적 관계를 형성하였다고 볼 수 있는데, 이러한 언약사상은 오늘날의 법률실무에도 적용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4. 종교의 자유와 교회-국가 관계


 미국 수정헌법 제1조에서 규정을 두고 있는 종교의 자유와 교회-국가 관계는 기독법학자들의 연구가 집중된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학교에서 공식적인 기도를 허용할 것인지, 종교계 학교에 대한 주정부의 재정지원이 정당화될 수 있는지 등과 관련해서 각종 소송에서 지속적인 문제가 제기되었고 이에 대해서 연방대법원은 종교의 자유를 제한하는 취지의 판결을 여러 차례 내린 바 있다.

 이러한 연방대법원의 태도에 대해서는 기독법학자들의 여러 비판이 이루어진 바 있다. 마이클 맥코넬은 이러한 연방대법원의 태도를 비판하기 위해서 자유주의(liberalism)를 끌어들이고 있다. 그는 로크에서 기원하는 자유주의는 다음과 같은 점에서 원래 기독교적인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1) 원죄와 유토피아의 거부, 2) 제한정부, 교회와 국가의 분리, 3) 양심과 권리의 보호, 4) 만인의 평등과 만인제사장 사상이 그것이다. 이러한 자유주의가 루소에 의해 세속화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국가가 특정한 가치를 개인이나 기관에게 강제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가치를 갖는다고 본다. 그런데 종교의 자유를 제한하는 취지의 대법원판결은 특정의 가치(비종교적 가치)를 강제한다는 점에서 자유주의에 반하는 문제가 있다고 주장한다.

 스티븐 카터도 자유주의의 맥락에서 종교의 자유를 접근한다. 그에 의하면 종교의 자유를 제한하려는 시도, 예를 들어 CLS가 기독교인들을 회원으로 모집하는 것을 로스쿨에서 허용하지 않는 것은 세속적인 자유주의 이론이 종교적 헌신과 만날 때 발생하는 비극으로 본다. 그는 세속적인 자유주의를 모든 사람이 믿어야 한다고 보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보면서, 기독인들은 이에 저항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진정한 자유주의는 개인에게 선택권을 중시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두 학자들의 견해를 보면 종교의 자유를 제한하는 정책에 대한 비판을 함에 있어서 ‘자유주의’라고 하는 정치철학적인 개념을 기반으로 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는 자유주의가 불완전하지만 기독교적인 가치에 그나마 부합한다는 전제를 깔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일반 정치철학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는 개념을 활용함으로써 기독교적인 입장이 비기독교인들에게도 설득력을 갖도록 하기 위한 전략을 취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종교의 자유가 제약을 받고 있는 현상에 대해서는 로버트 조지와 같은 가톨릭 법학자들도 비판적 목소리를 내고 있다. 로버트 조지는 ‘국제종교자유를 위한 미국위원회’(United States Commission on International Religious Freedom)의 의장직을 맡고 있고 국제적으로 종교의 자유를 확산시키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로버트 조지는 신학을 직접적인 근거로 삼아 주장을 전개하고 있지는 않지만 ‘궁극적인 의미와 가치를 추구하는 양심적 진실’이 인간번영의 핵심적인 측면으로 보고 있는 데에서 그의 가톨릭적 배경이 반영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로버트 조지 역시 종교적 자유를 강조하는 과정에서 세속적 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을 가하고 있다.


5. 법사학


 다음으로 기독법학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는 주요분야로 법사학분야를 들 수 있다. 이 분야의 대표적인 학자로는 해롤드 버만을 들 수 있다. 그는 2권으로 구성된 ‘법과 혁명’(Law and Revolution) 시리즈를 통해 11세기 교황혁명(Papal Revolution), 16세기 이후의 종교개혁(Reformation)에서 나타난 기독교사상이 서양법이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치밀하게 연구하여 명성을 얻은 바 있다. 1권에서는 교황혁명과 교회법, 세속법체계의 형성을 다루고 있고, 2권에서는 16세기 독일혁명(German Revolution)이 독일법에 미친 영향, 17세기 영국혁명(English Revolution)이 영국법에 미친 영향을 다루고 있다. 독일법과 영국법에서는 법철학, 법학방법론, 형법, 민법과 경제법, 사회법을 나누어서 설명한다. 

 버만은 ‘통합적 법사상’(integrative jurisprudence)을 주장하였는데 그는 법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정치’를 강조하는 법실증주의, ‘도덕’을 강조하는 자연법사상, ‘역사’를 중시하는 법사학의 세 가지 방법론을 종합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그에 의하면 법실증주의자와 자연법주의자가 궁극적으로 견해 차이를 나타내는 곳은 두 가지인데, 주권자가 이성과 양심에 근본적으로 반하는 입법을 한 경우와 법원 또는 법집행기관이 법이 기초로 하는 도덕적인 목적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법을 해석하는 경우가 그것이다. 버만은 이러한 문제들에 있어서 법실증주의가 선택하는 정치적인 입장과, 자연법주의자가 선택하는 도덕적인 입장의 차이는 진정한 이율배반(antinomy)으로 볼 수 없고, 동전의 양면에 불과하다고 본다. 현실의 역사 속에서 정치와 도덕은 상호작용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그의 입장은 법철학사에서 지속적으로 경쟁해온 법실증주의와 자연법사상이 법사학을 통해서 통합될 가능성을 제시하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데, 그의 법사학이 주로 기독교 역사가 법에 미친 영향을 탐구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법실증주의와 자연법사상의 통합을 추구한 것으로도 이해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해롤드 버만의 법사학적 방법론은 그의 제자인 존 위티 교수에 의해서 계승되고 있다. 그는 가족법, 인권법 등을 중심으로 기독교가 서양법에 미친 영향을 탐구하고 있다. 위티는 인권사상의 기독교적 기원을 칼뱅, 베자, 알투지우스, 밀턴 등을 통해 역사적으로 탐구하고 난 후에 결론에서 1) 인권에 대한 종교의 역할과 2) 종교에 대한 인권의 역할이라는 두 가지 논제를 다루고 있다. 우선 ‘인권에 대한 종교의 역할’과 관련해서 위티는 인권을 배양하고 도입하는 과정에서 종교가 더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인권이론에서 종교의 역할에 대한 무시는 다음과 같은 왜곡현상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첫째, 종교를 무시하는 것은 많은 권리들이 그 근원을 잃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고, 둘째, 종교를 무시하는 것은 인권제도가 무제한적으로 확장될 수 있는 결과를 초래하고, 셋째, 종교를 무시하는 것은 국가에게 인권 보장의 과장된 역할을 주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종교에 대한 인권의 역할’에 관련해서 위티는 근대 종교의 신학적 논의 속에 인권의 주제가 더 강화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에 의하면 인권제도는 서구에서 유대교, 그리스, 로마, 기독교, 계몽주의 등의 다양한 움직임들에 의해 육성되었으며 지금 이 시대에도 지속적인 육성이 필요한 만민법(ius gentium)으로서의 지위를 갖는다고 본다. 그는 종교단체들이 전통적으로 인권을 옹호하고 보호했던 역할을 다시 맡아 이 제도에 자신들의 완전한 교리의 활기와 예배의 치유와 도덕의 장려를 불어넣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음 호에 계속)


* 김대인 교수 : 법무법인 소명 변호사, 한동대 교수, CLF 연구위원장 역임. 현재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기독법사상 강독모임 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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