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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립(CLeaF) 55호 인문고전으로서의 구약성서 읽기

기독법률가회 0 1211

                CLF 클립(CLeaF) 55    


인문고전으로서의 구약성서 읽기

 

구약성서는 약 30억의 인류가 신봉하는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가 공통으로 존숭하는 경전이다. 구약성서가 특정종교집단이 신봉하는 경전이라는 데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으나 구약성경은 사실 종교문서로 폄하되고 환원되기에는 아까운 인류의 고전이기도 하다. 신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오딧세이>가 고전이듯이, 신의 계시에 의해 자신의 철학을 개진한다고 주장한 파르메니데스나 소크라테스의 철학이 고전이듯이, 이스라엘의 민족수호신 야웨의 맹활약이 돋보이는 구약성서 또한 고전이다. 역사 속에 등장해 주인공 역할을 한 야웨 하나님이라는 존재 때문에, 구약성서를 인류에게 보편적인 교양과 정신적 자양분을 제공하는 고전의 자리에서 배제하는 것은 부당한 일이다.

 

구약성서 전체에 걸쳐서 이스라엘의 수호신으로 자임하는 야웨 하나님은 언뜻 보기에는 이스라엘을 편애하고 이스라엘의 대적으로 맞서는 이방인들에게 엄청 가혹한 부족신(tribal god)처럼 보인다. 그런데 이런 이해는 지극히 피상적인 인상비평일 뿐, 구약성서 본문 어디에서도 지지받기 힘든 오도된 통설이다. 구약성서의 신, 야웨 하나님은 철저하게 체제전복적이고 권력비판적이고 약자옹호적인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구약성서 39권 전체에 걸쳐서 이스라엘의 민족주의적이고 자기복무적인 이데올로기를 지지하는 구절은 단 한 구절도 없다. 구약성서의 이스라엘은 특정한 민족의 이름이지만 실상은 이 지상의 절대적 압제자들이나 강자에게 삶의 터전을 빼앗겨 안전한 보금자리를 찾는 난민을 대표하는 자이며, 안식도 빼앗긴 채 강제노동을 강요당하는 노예를 대표한다. 구약성서를 산출한 이스라엘의 조상은 난민과 노예였으며, 구약성서 전체는 삶과 문명의 벼랑 끝에 추방된 난민과 노예와 친히 언약을 맺으셔서, 역사의 중심무대를 장악한 압제자들과 요새화된 성읍의 지배자들을 무찌르시고 해체하시는 체제전복적인 하나님을 내세운다.

 

- 김회권, 인문고전으로서의 구약성서 읽기머리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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