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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립(CLeaF) 56호 ‘우리는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이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다고 할 수 있는가?’ - 추석을 맞아

기독법률가회 0 1053

                  CLF 클립(CLeaF) 56    


우리는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이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다고 할 수 있는가?’ - 추석을 맞아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이에 대해 과연 무엇을 알고 있다고 할 수 있는가? 아들이 인턴 과정을 끝마치고 전문의는 무슨 과를 택할까 의논해 왔을 때 생각이 났다. 그애는 나만 반대하지 않는다면 마취과를 하고 싶다고 했다. 뜻밖이었다.

 

나는 아들로 인하여 자랑스럽고 우쭐해하는 데 익숙해져 있었다. ... 내 무지의 탓도 있었지만 마취과는 어째 내 허영심에 흡족지가 못했다. 나는 왜 하필 마취과냐고 물었다. 그애는 그 과의 중요성을 자세히 설명헸다.

 

그런 식으로 말해서 중요하지 않은 과가 어디 있겠니? 이왕 임상을 할려면 남보기에 좀 더 그럴 듯한 과를 했으면 싶구나.”

 

나는 내 허영심을 숨기지 않고 실토했다. 그때 아들의 대답은 이러했다. “어머니, 마취과 의사는 주로 수술장에서 환자의 의식과 감각이 없는 동안 환자의 생명줄을 쥐고 있다가 무사히 수술이 끝나고 의식이 돌아오면 별볼 일이 없어지기 때문에 환자나 환자 가족으로부터 고맙다든가 애썼다는 치하를 받는 일이 거의 없지요. 자기가 애를 태우며 생명줄을 붙들어준 환자가 살아나서 자기를 전혀 기억해주지 않는다는 건 얼마나 쓸쓸한 일이겠어요. 전 그 쓸쓸함에 왠지 마음이 끌려요.”

 

그 아들에 그 에미랄까, 나 또한 아들의 마음이 끌린 쓸쓸함에 무조건 마음이 끌려 그애가 원하는 것을 쾌히 승낙했다. ... 나는 그때 아들에 대해 새롭게 알았다. 품안의 자식인 줄로만 알았던 아들이, 알아버렸다가 아니라 알아야 할 무진장한 걸 가진 대상으로 우뚝 섰을 때 얼마나 대견했던지, 그리고 그때의 그 앎의 시작에 대한 설레임까지 꼬바기 밝힌 새벽 빛 속에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 박완서, 한 말씀만 하소서에서


1) 의사인 20대 아들이 갑자기 사고사한 후 아들 잃은 고통을 일기 형식으로 풀어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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