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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립(CLeaF) 68호 조이 루이스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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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LF 클립(CLeaF) 68 

 

 

조이 루이스의 편지 

 

* 저번 호(67호)에 소개한 C. S. 루이스의 편지 모음『메리에게 루이스가』에는 루이스가 메리에게 쓴 편지뿐만 아니라 루이스가 편지를 쓰기 어려운 상황에서 가족이나 비서가 루이스를 대신해서 쓴 편지가 몇 통 있습니다. 그중에 루이스의 부인 조이가 쓴 편지도 1통 있습니다. 루이스는 오랫동안 독신으로 지내다가 58세였던 1957년 조이와 결혼식을 올렸는데 그때 이미 조이는 골수암 판정을 받은 상태였고 결혼 이후 3년가량 투병하다 1960년 소천했습니다. 위 조이의 편지에는 자신도 암 투병으로 괴로운 상태에서 상대에 대한 위로와 격려를 아끼지 않고, 유머를 잃지 않는 따뜻함이 묻어납니다. 일부만 생략하고 거의 그대로 옮겨 싣습니다. 

 

 

June 6th 1958 

 

친애하는 메리에게  

 

잭 대신 제가 편지를 쓰게 되었는데, 괜찮으시겠지요? 잭은 지금 케임브리지 트라이포스(tripos) 일을 보고 있는데, 그 시험 답안지-엉뚱한 말로 가득한 것 같더라고요!-에 푹 잠겨있는 상태랍니다. 가끔 공기를 마시러 위로 올라왔다가, 몇 마디 애처로운 소리를 내고서는 다시 잠수한답니다. 앞으로 2주 동안은 아예 집에 들어오지도 못한다고 하네요. 결혼한 이래 가장 긴 별거 생활이라, 우리 두 사람은 지금 다 기분이 별로랍니다! 

 

병원에서 그런 일을 겪으셨다니 정말 싫으셨겠어요. 아무리 좋은 병원이라도 병원이 어떤 곳인지 저는 너무 잘 알지요. 어쩌면 간호사들은 그렇게 필요할 때는 다들 사라져버릴까요. 사방의 모니터와 라디오 소리 때문에 밤에 섬뜩섬뜩 놀라기 일쑤고요. 한 달 만에 처음 곤하게 잠든 우리를 밤중에 숙직 간호사가 깨워서는 수면제 먹을 시간이라고도 하지요.... 모르긴 몰라도, 아마 부인께서도 의대 수업 실습 대상도 되어 보셨을 겁니다! 여기 옥스퍼드에서는 가련한 환자들의 병실에서 의대생들이 시험을 치르기도 한답니다. 시험관들과 학생들이 각모를 쓰고 가운을 입고 나타나면, 환자들은 겁을 먹고 반쯤 돌아가실 지경이 되지요. 그런데 경험 많은 환자들은 정확한 진단을 못 내려 쩔쩔매는 학생들에게 살짝 답도 가르쳐 주고 그런다네요.... 

 

지금쯤이면 부인께서 집으로 돌아오시고, 검사 결과도 그리 나쁘지 않고, 또 그들이 올바른 답을 찾았기를 바랍니다. 뭔가 쓸모 있는 사람이 되고 싶으나 그렇지 못할 때의 심정, 저 역시 공감합니다. ... 전에는 힘을 내 가정부 일을 돕기도 했습니다만, 지금은 지팡이 짚고 걷는 처지에다가 손도 한 쪽만 쓸 수 있는 상태라, 도움이 되기보다는 방해만 될뿐이지요. ... 늘 받기만 해야 하는 건 정말이지 어려운 일이지요! 하지만 우리가 받으려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다른 이들이 줌으로써 얻는 즐거움과 영적 성장을 누릴 수 있겠습니까? 게다가 부인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저는 참 교만한 사람이랍니다. 사람들을 도울 때 생기는 우월감을 즐기는 사람인지라, 제게는 받는 것이 주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렵고, 또 아마 그래서 훨씬 복된 일이 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아프고 무력해지고 나서야, 사람들이 다들 근본적으로 선량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저를 위해 수고를 아끼지 않고 저를 도와주고 즐겁게 해주려 애쓰고 있는지요! 정말 마음 따뜻한 일이면서, 또 마음이 낮아지는 경험이기도 하답니다. 왜냐하면 그간 인간성에 대해 얼마나 냉소적이었던가를 떠올리며 유익한 부끄러움을 느끼기 때문이지요. 

 

부인의 애완동물은 고양이인가요, 강아지인가요? 제가 보니까, 고양이는 이런 변화와 이별을 꽤 잘 견디는 것 같더라고요. 제 고양이 하나는, 제가 아팠을 때 새로운 집과 새 여주인에게 보냈더니, 글쎄 일주일 만에 그들을 완전히 자기 지휘 아래 두더라고요. 

 

부인께서는 혹 뭔가 손으로 하실 줄 아는 것이 있나요? 저는 코바늘로 무릎 덮개나 식탁보를 뜨거나, 뜨개질로 양말을 만들거나 하면 마음이 울적하고 영적으로 힘들 때 놀라울 정도로 도움이 되더라고요. 뜨개바늘로 그렇게 많은 절망감을 무찌를 수 있는지 몰랐답니다. 제 경험상 쓸모 있는 것들만 만들 것이 아니라 예쁜 것들을 만드는 편이 더 낫더라고요.  

 

물론입니다. 우리 두 사람 다 부인을 위해 기도하고 있답니다. 설령 수술이 필요하다는 결과가 나왔더라도 너무 두려워하지 마세요. 제가 겪어보니까, 수술 자체는 그 전까지의 두려움만큼 그리 나쁘진 않더라고요. 

 

은총을 빕니다. 

 

                                                

                                                Yours, 

 

                                               Joy Lewis      

 

 

- C. S. 루이스,『메리에게 루이스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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